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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당 : 피해자와 가해자가 걷는 길은 평행선일지도 모른다.
    읽는다/독서 감상문 2016. 9. 6. 23:41

    악당

    悪党





    야쿠마루 가쿠 / 박춘상 옮김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선한 외모의 배우 앤드류 가필드가 나오는 '보이 A'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범죄를 저질렀던 소년이 성인이 되어 사회에 복귀하고 난 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는 비록 가해자였지만 이제는 성실하게 살고 있는 그에게 또 다시 기회를 주고 말고를 대체 누가 결정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범죄를 저질렀지만 그 죄값을 치뤘다면 그 다음엔 사회가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이야기는 거의 완벽하게 배제된다. 답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보다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피해자가 진심으로 그를 용서했는지 어떤지는 가해자의 사회복귀에 그리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야쿠마루 가쿠의 '악당' 속에도 방향이 조금 다를 뿐 피해자가 배제된다는 결론은 비슷한 시선이 있다. 가해자는 어떻게 하면 용서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 속에는 어차피 무슨 짓을 해도 용서 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어차피 용서받을 수 없으니 용서를 구하지도 않을 거고 착하게 살지도 않겠다는 '악당'들이 존재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호프 탐정 사무소에서 일하는 사에키 슈이치다. 그는 우연히 자신의 아들을 죽인 가해자의 현재와 그를 용서해도 되는지 아닌지를 알아봐달라는 의뢰를 받게 되고 이를 계기로 다양한 가해자들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일련의 의뢰들을 해결해나가는 동시에 그의 삶을 줄곧 옭아매고 있던 '그 사건'의 가해자들에게도 조금씩 가까워져간다. 사에키는 피해자다. 피해자의 가족이고,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풀리지 않는 의문과 증오를 가지고 살고 있다. 자신의 누나가 학생이었듯이 가해자들 또한 미성년자였기에 그들의 신상은 철저하게 보호되었다. 그래서 그들의 이름을 알아내는 것만으로도 수년의 시간을 소모해야 했다. 피해자 입장에선 그조차도 불합리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아이러니하지만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가해자들은 대부분 잘 살고 있다. 괴로워하고 고생하고 있는 것은 역시 피해자들이다.


         내 어떤 모습을 봤어야 용서할 생각이 들었을까? 나는 어떻게 해야 용서를 받을 수 있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가해자의 질문이다. 만약 당신이 피해자라고 했을 때, 가해자가 저렇게 물어온다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만약 나라면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뻔뻔함에 크게 화를 내거나, 차갑게 무시해버리거나, 혹은 그딴 방법이 있을 리 있겠느냐고 헛소리 집어 치우라고 했을 것 같다. 저 가해자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온갖 훌륭하고 의미있는 선행들을 하며 남은 생을 살고 있다면 용서할 수 있을까? 제3자라면 혹시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그 정도면 됐잖아, 개과천선해서 훌륭하게 살고 있네, 따위의 말을 하면서. 하지만 당사자도 그럴 수 있으리라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용서한다고 해서 상대방에 대한 모든 원망과 미움이 사라질 리도 없고, 과거가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니까. 하물며 그 가해자가 반성의 기색조차 없다면? 답은 정해져 있는 것 아닌가. 그 어떤 일이 일어나건 간에 피해자와 가해자가 걷는 길은 영원히 평행선일지도 모른다. 물론 세상엔 가해자를 용서하는 피해자도 있다. 하지만 만약 내가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그건 용서가 아니라 체념하는 것에 불과할 뿐일 거라고 생각한다.   


         사에키의 결론도 그에 가깝다고, 나는 느꼈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가, 그리고 세상의 모든 피해자들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보란 듯이, 웃으면서. 

     

    * * *


    책을 읽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그 내용을 곱씹고 되새김질하는 시간이 더 길었던 것 같다.


    악당
    국내도서
    저자 : 야쿠마루 가쿠 / 박춘상역
    출판 : 황금가지 2016.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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