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

斜陽


다자이 오사무 / 유숙자 옮김



     다자이 오사무를 처음 알았던 건 중학생 때였다. 한참 일본 문화 콘텐츠들이 알음알음 유행하던 시기였는데, 그 때 보게됐던 드라마 제목이 <인간 실격>이었다. 물론 소설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지만. 그 드라마 제목은 소설과 달리 인간과 실격 사이에 점이 하나 들어가 있었는데, 그게 저작권 때문이란 이야기가 돌았고, 그렇게 처음 다자이 오사무와 그의 대표작인 <인간 실격>이란 소설을 알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중학생의 내가 읽기엔 조금 어려운 내용의 작품이지만 막연하게 요조라는 인물이 흥미로웠던 기억이 있다. 좀 더 나이를 먹어가면서 문득 생각날 때마다 반복적으로 읽었던 기억도. 그렇게 다시 그 책을 손에 들 때마다 소설도 소설이지만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게 되었고 요조 속에 투영된 작가 자신을 느끼게 됐던 것 같다. 그래설까, <사양>을 읽는 내내 또 다시 다자이 오사무 본인의 모습을 보는 듯한 인물들을 보며 낯설지 않은 반가움, 비슷한 걸 느꼈다. 참 흥미로운 사람이다.  


     <사양>은 전후 일본 사회를 담아내고 있는 소설이고, 신분제 사회가 한순간에 무너져가는 시기 속 귀족이었던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화자는 그 가족의 장녀 가즈코이지만 그의 눈을 통해 볼 수 있는 건 비단 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 시대나 그렇듯 구세계의 규칙이 무의미해지고 신세계의 새로운 법이 만들어졌음에도 순응하지 못하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침잠하는 이들이 있다. 물론 반복되는 매일 속에 자연스럽게 흐르듯 새로운 세계에 익숙해져 가는 이들도 있고. 가즈코로 말할 것 같으면 물론 전자에 속했다. 줄곧 그래왔던 것처럼 타인에 의해 정해진 삶을 살아가는. 


     그러던 와중에 참전했던 남동생 나오지가 돌아온다. 조금 달라진 삶이었지만 그래도 평온하게 이어나가던 가즈코와 어머니의 일상이 크게 흔들리게 된 것 역시 나오지가 원인이다. 예전부터 문제덩어리였던 나오지는 귀족이 몰락한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되려 더 엉망진창이다. 하지만 그런 나오지로 인해 가즈코는 또 다시 타인에 의해 삶을 휘둘릴 위기를 맞는다.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정해진 삶. 아무것도 모른 채 했던 첫 결혼과 실패. 우아했던 귀족의 삶에서 작업화를 신고 험한 일을 해야되는 현실. 가즈코는 그 속에서 결국 스스로의 의지로 제 삶의 방향을 정할 것을 결심한다. 한편 나오지가 있다. 일생을 변변치 못하게 살았던 나오지. 누구보다 사회의 격변에 순응하고자 하면서도 끝끝내 하지 못했던 삶. 앞서 언급했듯이 작가 다자이 오사무와 요조가 떠오르는 인물이었다. 어찌보면 새로운 삶에 방황하기보단 자신만의 길을 선택해나갔던 가즈코보다 이도저도 아닌 채 존재했던 나오지가 <사양> 그 자체가 아닐까. 마지막으로 남긴 유서에서조차 변명으로 일관하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솔직한 감정이 드러난 몰락귀족의 모습 말이다.



     인간은 모두 다 똑같다. 평등하다, 는 말을 비틀린 방식으로 받아들인 나오지는 결국 다른 모든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맞는다. 스스로의 손에 의해서. 가즈코는 달랐다. 그가 살아왔던 삶의 모든 기준이 송두리채 뽑혀나갔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물론 가즈코가 살기로 한 삶의 방향을 내 기준으로 평가하고 싶진 않다. 다만 그가 스스로 결정해서 행동하고 살아나가기로 한 것은 그에게 있어 실로 혁명 그 자체였을 거라 믿는다. 패전 이후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 억지로 끌려가듯 변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또한 그가 살아왔던 시절을 기준으로 봤을 때 가즈코의 선택은 과감하고 도전적인 것이 분명했고, 그가 앞으로 살아나갈 시절 역시 결코 쉽지만은 않았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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