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커스 나이트

サーカスナイト


요시모토 바나나 / 김난주 옮김


     요시모토 바나나는 사실 내가 나의 이십대를 추억할 때 떠오르는 이름들 중 하나인데, 지금 생각하면 그저 너도 나도 읽길래, 어, 그럼 나도 읽어볼까, 하면서 집어 들었던 것이 '허니문'이었다. 그러니까 그 시기는 요시모토 바나나라든가 에쿠니 카오리 같은 일본 여성 작가의 담담하면서도 섬세한 문장들로 가득 찬 글을 읽는 것이 유행 비슷한 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들은 그 때의 나보다 지금의 내게 더 잘 맞는다. 그간 겪어낸 삶만큼 더 이해할 수 있으니까. 그래도 여전히 요시모토 바나나는 내 이십대를 상징하는 몇 가지 것들 중 하나이고,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넘겨 준 선물 같은, 그런 작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내 독서 취향은 그 때의 나와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마도 그 시기의 내가 요시모토 바나나를 집어 들지 않았더라면 난 영원히 그의 글들을 읽지 못했을 거다. 이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과거는 현재를 만들어간다. 그리고 ‘서커스 나이트’는 그런 이야기였다.


     이야기는 이 글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사야카가 의문의 편지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편지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공교롭게도 그 발신인은 사야카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다. 물론 상대방은 편지의 수신인이 사야카라는 걸 모르는 채다. 잔잔한 일상에 파문이 생기려나, 두근거렸던 것도 잠시, 이야기는 격변하기보다는 사야카의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가며 사야카가 어떤 사람인지 천천히 알려주는 길로 간다. 그래서 난 안심했던 것 같다. 이래야 요시모토 바나나지, 같은 근거 없는 편안함 같은 게 느껴졌다.


<이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전화고 뭐고 맨발로 뛰어 내려올 관계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건 우리가 시간을 두고 자연스럽게 관계를 키워 왔다는 증거다. 그 시간은 계약이나 관습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우리가 키워 온 우리만의 시간이다.> (p.91)


     그리고 늘 그렇듯 그 문장 하나하나가 마음을 두드리며 사야카라는 인물을 소개한다. 사실 소설 속 인물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 하지만, 친구가 되고 싶다고 느낀 건 오랜만이었다. 여러모로 나와는 다르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비슷해설까. 작가 본인도 그렇다고 하니,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도 당연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리의 사야카는 사물의 기억을 읽을 줄 안다. 그렇지만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아니, 대단한 능력이지만 그 특기가 그의 삶을 조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어쨌든 주인공은 신기한 능력을 가졌고, 범죄소설의 사건 소재로 쓰일법한 수상한 편지를 받지만, ‘서커스 나이트’는 담담하고, 잔잔하면서, 흥미롭다. 


<어중간한 상태에 있지만, 그 상태가 조금도 싫지 않다. 오히려 이대로 시간이 마냥 흘러 인생이 끝나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지금이 행복하고 추억 속에 살고 싶다. 추억을 기반으로 한 미래가 아니면 인정하고 싶지 않은 기분을 내 손바닥 보듯 알 수 있었다.> (p.154~155)


     읽는 내내 과거에 얽매이지 않지만, 과거를 부정하지도 않는 사야카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는 듯한 글이었다. 그래서 이미 멋대로 친구가 된 기분이지만, 이미 사야카와 '서커스 나이트'는 내 책장 속에 자리를 잡고 있고, 만약 정말로 사야카와 만나게 된다면 기꺼이 내 친구가 되어줄 것 같으니까, 그걸로 괜찮지 않을까? 




덕분에 한동안 들여다보지 않았던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들이 다시 읽고 싶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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