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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꿈의 도시 : 꿈의 도시는 없는 곳(無理)이었다.
    읽는다/독서 감상문 2011. 1. 6. 23:11

    2011. 001.
    꿈의 도시
    無理
    오쿠다 히데오 지음ㅣ양윤옥 옮김
        


         오쿠다 히데오의 글은 이번이 두 번째다. 우연한 기회에 선물을 받았던 '인 더 풀'이 그 처음이었는데, 특이하다는 말 정도로는 설명이 안되는 괴짜 정신과 의사 이라부가 제법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간 발간된 수많은 오쿠다 히데오의 글들을 제껴두고 이번에 읽게 된 것이 바로 이 '꿈의 도시'. 한 번에 읽어내기엔 다소 부담스러운 630페이지의 장편 소설로, 쇠락한 지방의 세 개의 읍을 하나로 통합하며 각 읍의 머릿 글자를 조합해 만든 '유메노 시'를 배경으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일종의 군상극이다. 그래도 그 긴 길이가 지루하진 않다. 같은 공간 안에서 제각각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다섯 명의 남녀가 겪는 일상이 제법 흥미롭기 때문이다.

         아내의 바람으로 이혼해 혼자 살고 있는 생활보호과 공무원 아이하라 도모노리. 그는 새로 통합된 유메노 시의 어수선한 시청에서 현청으로 이동하게 되기만을 바라고 있다. 사무 전반이 제대로 정착되어 있지 않은 신 시청에서 그가 하는 일은 지나치게 많은 생활보호비 수급자를 줄이는 일. 이미 쇠락해버린 지방도시에는 일하지 않고 이런저런 핑계로 생활보호비를 타내 먹고 사는 이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클래스 메이트들을 포함해 주변의 학생들이 마냥 한심해보이는 여고생 구보 후미에. 그녀는 친구인 가즈미와 도쿄에 놀러갔을 때를 곱씹으며 도쿄에서의 우아한 대학 생활을 꿈꾸고 있다. 죽어도 유메노 같은 촌구석에서 일생을 보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런 시골 구석에' 남는 것은 '낙오자'이기 때문이다. (p. 29)
         노인들을 상대로 누전 차단기 판매 중인 영업 세일즈맨 가토 유야. 전직 폭주족 출신의 사장 가메야마의 회사에 다니고 있는 역시나 전직 폭주족인 가토는 쇠락한 지방 도시 답게 상당히 많은 노인 인구층을 상대로 사기 세일즈를 하고 있다. 그럴싸하게 설득만 잘하면 얼마든지 돈을 받아낼 수 있다.
         드림 타운의 지하 슈퍼에서 보안요원으로 일하고 있는 파견 사원 호리베 다에코. 사복을 입고 대형 슈퍼마켓에서 소매치기를 하는 이들을 잡아내는 일을 한다. 처음엔 낯설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이젠 타인의 위에 서서 그들을 내려다보는 것의 즐거움을 알아가고 있다.
         현의회로의 진출을 꿈꾸고 있는 2세 시의원 야마모토 준이치. 아버지가 쌓아올린 탄탄한 기반을 바탕으로 연임에 성공했지만 자잘한 시의원의 일에 질려 좀 더 큰 물에서 활동하고 싶어한다. 유메노로 통합된 뒤로는 시민 운동이니 뭐니 하는 것들만 더욱 귀찮게 늘어났을 뿐이다.

         이렇게 사회적 신분도, 배경도 전혀 다른 다섯 사람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진행되는 이 소설은 그 설정만으로도 이미 다양한 현실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지만 그 다섯 사람의 삶이 어떠한 계기로든 틀어지는 순간마다 눈을 돌리고 싶을 정도로 답답한 현실 속으로 한발자국씩 더 들어간다.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라든가, 실업, 가정 폭력, 불륜, 성매매, 살인, 정경유착, 중소상권의 몰락, 신흥종교, 인종차별에 이르기까지 건드릴 수 있는 한의 현대 사회, 특히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가상의 도시인 '유메노 시' 속에 풀어낸다. 결국 꿈의 신도시라는 말로 허울 좋게 포장되어 만들어진 '유메노 시'는 전혀 '꿈의 도시'가 아닌 것이다. 쇠락한 지방의 세 개의 읍을 하나의 도시로 통합하며 내밀어진 장미빛 청사진 따위 그저 평범하게 그 안에서 살아가던 이들에게 있어선 아무런 의미도 없다. 되려 통합 작업이 이루어지며 진행되는 일들은 기존의 공간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근근히 살아나가던 소시민들을 더욱 춥게 만들 뿐이고, 각종 부패를 저지르는 이들이 더욱 더 활개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불편한 내용들을 그다지 무겁지 않게 계속해서 이야기해나가는 이 630페이지짜리 소설은 그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는다. 내가 그것을 깨달은 것은 약  500페이지 가까이 읽었을 때였다. 읽어온 부분이 남은 부분보다 훨씬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다섯 명의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번져나가는 산불처럼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었다. 절대로 남은 백 페이지 가량만으로는 이 다섯 주인공들의 삶이 '바로잡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리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어쩐지 마음이 편해졌다면 내가 이상한 걸까. 그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되돌리기엔 이미 다들 너무 늦어버렸다. '이미 내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p. 630) 소설이기에 꿈을 그려주길 원했던 부분도 있었다. 소설이니까 이렇게까지 사방으로 내달려버린 주인공들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주길 바란 것도 같다. 하지만 오쿠다 히데오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소설적 장치는 각각 달리고 있는 주인공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만든 것으로 끝이 난다.


    ***


         번역된 소설의 제목은 '꿈의 도시'다. 소설 속 배경의 되는 '유메노 시'를 직역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소설의 원제는 '無理' 다. 처음엔 어째서 '無理'가 '꿈의 도시'가 된걸까 의아해했지만 작품을 끝까지 다 읽은 지금에 와서는 원제도, 번역된 제목도 작가의 의도를 잘 담아낸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꿈의 도시'가 '유메노 시'이고, 소설 속에서 세 개의 읍이 통합되어 만들어졌다는 '유메노 시'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꿈의 신도시인양 포장되어 있지만 그런 도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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