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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머리 여인 : 현대사에 녹아든 오래된 신화.읽는다/독서 감상문 2018. 8. 15. 21:40
빨강 머리 여인
Red-Haired Woman
오르한 파묵 / 이난아 옮김
오이디푸스의 이야기가 비극적이라고 느꼈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일 운명을 타고난 아들이라니! 혹은 자신을 죽일 운명의 아들을 가진 아버지라니... 어린 마음에 뭐 이런저런 슬픈 생각을 했었겠지. 하지만 오이디푸스 신화를 원형으로 수없이 변주되어 온 이 아버지와 아들, 때론 그 반대의 이야기는 사실 비극이기보단 희극적이다. 어째서 그들은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나야 하는가? 왜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를 경쟁자로 여겨야만 하지? 게다가 그들 사이의 역학관계를 표현하는 상징은 철저히 타자화된 여성, 대부분의 경우 어머니이다. 그러니까 왜? 그래야만 하는 이성적인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야생 속 죽고 죽여야만 내가 사는 생존경쟁에 내몰린 동물도 아니고. 그러니까 우스운 거다. 그래서 처음 이 소설, ‘빨강 머리 여인’을 받아 들었을 때, 이 뻔한 이야기를 어떻게 뻔하지 않게 그려냈을까,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뻔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더 이상 어떻게 이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터키 사회 속 인물들에게 녹여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 오래된 신화와 고전을 터키라는 나라의 현대사 속에 능수능란하게 박제해놓은 소설이다. 기왕 오래된 소재를 다시 꺼내오려면 이 정도로는 철저히 해야 납득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이 세계를 목격하고, 또 살아 있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생각했다.
p. 52
이야기의 화자는 젬이다. 터키의 반체제 운동가였던 아버지의 이른 부재를 겪은, 작가를 꿈꾸는 '도련님'이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실종이 단순히 정치적인 이유만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열일곱이 되었을 때 우물을 파는 일을 하는 마흐무트 우스타(장인)를 만난 젬은 그를 따라 왼괴렌으로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장차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게 될 시기를 보내면서 ‘빨강 머리 여인’ 또한 만나게 되는 젬의 이야기와 함께 작가는 오이디푸스 그리고 이란의 민족서사 ‘왕서’ 속 뤼스템의 이야기를 함께 풀어낸다. 유명한 오이디푸스와는 달리 뤼스템은 이름부터 낯설지만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이게 되는 아들이라면, 뤼스템은 ‘운명적으로’ 아들을 죽이게 되는 아버지다. 입장이 바뀌었을 뿐 그 둘을 둘러싼 상황은 거의 흡사하다. 물론 우리의 젬도 그렇다. 단지 젬은 부득이하게 혹은 운명적으로 1인 2역을 하게 되었을 뿐이다ㅡ오이디푸스이자 뤼스템인 젬!
앞서도 언급했듯이 오이디푸스와 뤼스템의 오래된 신화는 젬을 중심으로 급변해가는 터키의 현대사 속에 뻔뻔하리만치 천연덕스럽게 녹아 들었다. 그래서 이 글은 신화적이면서도 현실적이고, 건조하다. 하지만 마침내 내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건, 화자가 젬에서 ‘빨강 머리 여인’, 귈지한으로 바뀌는 3부에서였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되어서야 입이 주어진 건 아쉬울 따름이지만, 어찌됐든 간에 이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무엇을, 왜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던 존재는 ‘빨강 머리 여인’뿐이라는 사실이 인상적이지 않을 리 없다. 심지어 아마도 절망의 바닥에 놓여있었을 아들을 끌어안고 울부짖던 순간조차도 그는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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