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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 '서편제' : 말로 설명하기 힘든, 그런 먹먹함이 남다.
    본다/그외것도 봄 2010. 10. 21. 20:07


          사실 어떤 말로 이 글을 시작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평소엔 아무 생각없이 써내리던 글의 제목만도 이틀째 고민 중이다. 서편제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뮤지컬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긴 하지만 무대극 자체는 처음이 아니라 보고나면 이렇다 저렇다 무어라 할 말이 많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다. 재미있었다고 하기엔 무언가 부족한 것 같고 감동적이었다고 하기엔 내게 남은 것이 너무 먹먹하고 무겁다. 소설로도, 영화로도, 조금씩 다르지만 그래도 '서편제'는 항상 그래왔었다. 하지만 이제 내게 있어서 가장 처음으로 생각날 '서편제'는 분명 이 뮤지컬 '서편제' 다.


    뮤지컬 '서편제' …


          아예 나와 세대가 다르다면 모르겠지만 '서편제' 는 아마 모르는 사람이 적을 거라고 생각한다. 책이든, 영화로든, 그도 아니라면 최소한 그 단어만은 들어보지 않았을까. 그만큼 서편제는 소설과 영화를 통해 우리 것, 우리 소리의 대표격으로 인식되어 왔는데, 이번엔 역시나 '가장 한국적인 소재로, 한국을 대표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단순히 한국적인 것만을 강조하고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 윤일상이 제작 스텝에 합류하는 등의 방식으로 우리의 소리와 서양 음악을 조화롭게 엮어내는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사실 공연을 보기 전까지 타이틀이 '서편제'인 만큼 판소리만 계속 하는 다소 지루한 느낌의 극은 아닐까 약간 걱정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만큼 판소리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두시간 이상 판소리를 즐겁게 들을 만큼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어찌보면 당연한 걱정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묘한 느낌을 주던 아이들의 노랫소리로 시작한 서편제는 단순히 판소리만을 하는 공연이 아니었다. 물론 내용의 중심인 '소리'는 판소리를 통해 구현되어야 하는 것이었지만, 아버지와의 갈등 끝에 집을 떠나 자신의 꿈을 찾는 동호는 락 보컬리스트로 성장하고, 그렇게 우리의 소리와 서양의 음악은 '서편제' 안에서 끊임없이 어우러진다. 나로선 모든 것이 처음이라 신기했는데, 공연 중의 음악을 밴드가 직접 라이브로 연주하는 것도 그러했고, 하나의 노래가 다른 노래와 만나면서 전혀 다른 제 3의 노래가 만들어지는 것들도 신기하기만 하더라. 무엇보다 가장 와닿았던 것은 뮤지컬이니 당연한거겠지만 나로선 처음인 노래와 연기를 동시에 하는 배우들이었지만 말이다 ^^;;;

    '서편제' 속 인물들, 배우들…

    서편제 등장인물

         뮤지컬 '서편제'는 소설과 영화 그 어떤 장르의 '서편제' 보다도 유봉, 송화, 동호의 균형이 아슬아슬하면서도 잘 맞아떨어진 작품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관람한 날의 캐스트는 유봉 역의 JK 김동욱, 송화 역의 차지연, 동호 역의 김태훈, 동호의 어머니 역은 이영미, 바니 역은 조영경 씨였다. 기존에 뮤지컬을 관람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배우가 어떤 스타일의 연기를 하고 노래를 하는 지 전혀 모르는 상태로 보게 되었고, 그래서 배우들의 이름도 정확하게 잘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단 한 사람, 송화 역의 차지연 씨는 아마 당분간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문외한인 내 눈에도 특히 송화 역의 차지연 씨는 정말, 송화 그 자체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금은 송화의 다른 캐스트 분들의 공연 사진을 보면 '송화가 아닌데...' 싶을 정도로 차지연 씨 외의 송화는 상상도 가지 않을 정도다. 그런 차지연씨가 얼마전 있었던 제 16 회 한국 뮤지컬 대상 시상식에서 바로 이 작품으로 여우신인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내가 받은 것도 아닌데 괜시리 뿌듯하고 기쁜 걸 보면 어지간히 차지연 씨의 송화가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정말, 아직도 송화를 생각하면 괜히 먹먹하고 그러니까. 사실 공연을 보고나서 차지연 씨가 궁금해져 이런저런 기사들을 뒤적여봤는데 한 인터뷰에서 '뮤지컬 '서편제'의 공연을 마치고 나면 때 묻고 더러워졌던 영혼이 깨끗하게 닦아져 있는 느낌이 든다' 한 것을 보았다. 정말, 그 말 그대로 송화는 맑고도 맑아서 그녀가 겪어야하는 모든 일들이 내가 다 서러웠었다. 유봉도, 동호도 제각각의 한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이지만 송화는 그들처럼 말로만 한을 삭이고 품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진실로 그 모든 것을 속에만 담고 평생을 살았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뮤지컬을 보면서 이런저런 부분은 마음에 안들기도 하고 거슬리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송화가 나타나서 내 시선을 끌고 가버리더라. 나에겐 그걸로 충분했고 말이다.


         그렇다고 이 뮤지컬이 마냥 한스럽고 서글프고 안타깝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그렇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분명 미소 지을 수 있고 기분이 좋아지는 장면들도 제법 많이 들어있으니까. 그런 부분들이 튀거나 엇나가지 않고 하나의 공연으로 감싸안아질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전혀 다른 타입의 음악을 조화롭게 엮어낸 뮤지컬이어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뭐, 난 잘 모르니까 그저 모든 게 신기하고 재미있기만 했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어쨌든 내게 있어 처음 관람하게 된 뮤지컬이 '서편제' 라는 것은 참, 다행이면서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처음인데도 충분히 만족스럽게 공연을 보고 왔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이번 관람으로 인해서 뮤지컬에 빠져들게 되면 어떻게 하나, 싶은 걱정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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