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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컨테이젼 (Contagion, 2011) : 이것은 영화다.
    본다/영화를 봤다 2011. 10. 21. 11:07

    컨테이젼

    Contagion, 2011





     





         솔직히 말하자. 내가 이 영화를 보려고 생각했던 것은 오로지 배우들 때문이었다. 이 쟁쟁한 배우들 중에서 굳이 좋아하는 배우를 꼽으라면 주드 로, 정도지만 내가 좋아한다고 하지 않는다 해서 이 배우들이 가진 힘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 배우들이 '전부' 한 번에 나오는 영화라면 봐두는 게 좋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내가 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가 정확히 맞다.

         그렇게 충실한 마음가짐으로 영화를 보면서, 또한 보고나서 생각한 것은, 어쨌든 그래도 이건 영화라는 거였다. 혹은 영화라서 다행이다, 라고 해야하나?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다시 이 영화를 떠올리는 지금, 
    막상 볼 때는 못 느끼던 스산함이 느껴지는 것은 이 영화가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지만, 어쨌든 이건 영화다. 멋진 영화 배우들, 그것도 어디 내놔도 꿀리지 않을 배우들이 줄줄 나오는 영화.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다만, 타인에게 선뜻 추천할 수는 없는, 그런 영화다. 컨테이젼은.

    위기를 맞은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대처한다.

         영화는 '두번째 날'에서 시작한다. 홍콩 출장을 마친 베스(기네스 펠트로)가 시카고 공항에서 집으로 가기 위한 비행기를 기다리는 장면에서부터다. 집에 돌아간 베스를 기다리고 있는 건 남편 토마스(맷 데이먼)와 사랑스러운 아들. 이 부부는 각자 아이를 데리고 재혼을 한 사이다. 그런데 베스가 아프기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는 베스의 상태가 점차 나빠지는 것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세계 곳곳의 수상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지극히 건조한 방식으로. 일본에서, 홍콩에서, 영국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한다. 베스도 물론 발병 며칠 만에 사망하고 만다. 미국의 보건 당국에서도, 국제 보건 기구인 WHO에서도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인다. WHO에서 홍콩으로 파견을 가게 된 오랑테스(마리옹 꼬띠아르)가 그러하고, 베스가 사는 곳으로 조사를 하러 간 미어스(케이트 윈슬렛)도 그렇다. 

         얼핏 생각하기론 이런 이야기,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손 쓸 틈도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한다, 는 이야기라면 좀 더 영화적으로, 과장되고 드라마틱하게 만들 수도 있을 법 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철저하게 건조한 영상만을 보여준다. 하지만 제법 적나라하다. 미지의 바이러스가 발견되고, 피해가 발생하고, 퍼져나간다. 일반 시민들에게 공표하기 전에 관계자들은 자신들이 해야할 일들을 해나간다. 연구원들은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공무원들은 시민들의 불안을 조장할 수는 없다며 확실치 않은 질병에 대해 공개하길 꺼린다. 많은 예산을 들여서라도 격리 시설을 만들자는 보건 당국의 담당자에겐 예산은 어디서 나냐며 뚱하게 되묻는다. 하지만 피해는 점차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확산된다. 만들 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공포에 빠진다. 여전히 백신은 만들어지지 않고 신뢰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진실로 둔갑해 떠돈다. 인간은 약한만큼 잔혹해진다.

         그리고 역시 동시에 진행되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개인 블로그를 가진 저널리스트 크롬위드(주드 로)가 주인공이다. 그는 우연히 일본에서 발생한 이 바이러스의 첫번째 희생자 영상을 웹 상에서 발견하고 직감한다. 무언가 정확하겐 모르지만 엄청난 일의 전조가 아닐까, 라는. 하지만 이 취재 건수를 들고 찾아간 곳에선 무시당할 뿐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무서운 바이러스가 퍼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크롬위드는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갱신하기 시작한다. 제약회사들과 WHO, 정부가 돈을 벌기 위해 백신을 비밀리에 만들고도 쉬쉬하고 있다는 음모론부터, 효과적인 치료 방법에 이르기까지, 크롬위드는 일약 시대의 총아가 되어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위치에까지 오른다. 불안과 공포, 혼돈 속에서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을 믿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언급한 것 외에도 주요 등장인물들은 각각의 크고 작은 사건들에 휘말리고, 선택하고, 살아간다. 두번째 날에서 시작한 영화는 수십일이 경과하는 동안의 과정을 여전히 건조하게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담아낸다. 그리고 마지막은, 첫번째 날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언가 반전을 기대해선 안된다. 그건, 무언가의 첫번째 날이라기보단 두번째 날의 전 날의 이야기 같은 느낌일 뿐이니까.

     
    * * *

         처음에도 말했지만 난 이 영화가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정말 누군가에게 추천할 용기는 안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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