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어 버렸다. 처음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부터 사실, 알고 있었다. 바쁜 일과 속에 책장 하나 넘기기가 힘든 내가 560 페이지나 되는ㅡ게다가 커서 들고 다니기도 힘든ㅡ이 책을 쉽게 읽어내긴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절반 정도만 읽고 감상문을 쓸 작정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국 그러지 못한 나는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감상문을 쓸 수 없었고, 결국 이 아슬아슬한 시간에 자판을 두들기게 되어버렸다.
아아, 딱 하루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렇다면 나는 계속 책장을 넘기려는 과거의 나를 제지하고, 지금과 전혀 다른 내용의 감상문을 쓰게끔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순간, 평행우주가 만들어져, 이 소설에 대한 두 개의 다른 내가 쓴 감상문이 존재하게 되나? 역시, 흥미로운 소재다.
이 소설은 크게 세 가지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있다. 바꾸고 싶은 과거를 가진 청년 앤드류,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만들어내고픈 톰, 그리고 이 소설의 주인공, 이라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작가 웰스. 솔직히 말하자면 첫번재 앤드류의 이야기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장의 마지막까지는. 이 책을 이렇게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던 것도 어쩌면 첫번째 이야기가 책장을 마구 넘기고픈 욕구를 불러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8년전, 세기의 살인마ㅡ로 우리는 알고 있는 '잭 더 리퍼'에 의해 사랑하는 연인을 살해당한 청년 앤드류가 그 과거를 바꾸네 마네하는 이야기는 어찌보면 너무 뻔해보였다. 그 행위를 위해 장황하게 이어지는 길리엄 머레이의 이야기도 그러했고, 웰스의 등장도, 사실은 그러했다. ㅡ그러니까 나는 앤드류과 그의 헌신적인 사촌 찰스가 웰스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눌 때까지도 웰스는 그저 지나가는 캐릭터 쯤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청년의 로맨틱한 연애스토리만으로 이 소설은 끝나지 않았다. 첫번째 이야기도, 두번째 이야기도, 세번째 이야기까지도 그 모두가 하나의 줄기를 가지고 이어진다. 첫번째 이야기 말고도 다른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어떤 이야기인지 설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이야기에 대해 아는 것은 첫번째 이야기를 읽어낸 독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야기를 읽고나서야, 두번째 이야기가 재미있고, 두번째 이야기를 읽고난다면, 세번째 이야기를 보기 위해 책장을 넘기는 손을 멈추는 일이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 난 이 글을 읽으면서 내가 가졌던 기대가 번번히 무너지는 것이 가장 흥미로웠다. 특히 마지막 이야기를 보면서, 아, 이번에도 그러려나, 하는 기대를 다시 한번 무너트려버리니 피식, 웃음까지 나오더라. 작가와의 줄다리기라는 것은, 이렇게 즐겁다.
결국 시간여행을 하느냐 마느냐, 그것이 가능하냐 아니냐는 글쎄, 중요한 게 아닌 것 같다. 이 소설은 결국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은 해본다. 만약 웰스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 소설은 어떻게 끝이 나는 걸까? 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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