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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아버지를 죽였다 : 그는 아버지를 죽였다.
    읽는다/독서 감상문 2011. 3. 16. 22:30



    2011. 010.
    내가 아버지를 죽였다
    O DIA EM QUE MATEI MEU PAI
      마리오 사비누 지음 l 임두빈 옮김
        

          어떤 책을 읽기 전에 그 책을 골라서 책장을 넘기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각각 다르고 또 책마다 각각 다르겠지만, 브라질 출신의 작가 마리오 사비누의 첫 장편 소설인 '내가 아버지를 죽였다' 의 경우는 그 강렬한 제목이 그 계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만큼 소리내어 말하기에도, 타이핑을 하기에도 어쩐지 좀 껄끄러움을 느낄 정도로 강렬한, '존속살해' 에 대한 담담한 고백을 그 제목으로 가지고 있는 이 소설은 꽤나 흥미로운 글이었다. 책을 읽기 전에 했던 생각 혹은 기대와는 많이 달랐지만, 그 어긋남이 결코 불만스럽지 않았을 정도로. 

          먼저 어긋난 내 기대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사실, 난 그랬다. '존속살해'라는 죄를 저지르고도 '내가 아버지를 죽였다'고 지극히 덤덤하게 말할 수 있는 주인공과 그런 그를 상대해야하는 심리 상담가와의 치열한 심리전, 혹은 처절함 따위를 상상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난 주인공이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는데에 특정한 이유, 동기 따위가 없었던 '사이코패스'나 '쾌락 살인마' 같은 부류의 사람일 거라고 지레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ㅡ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자기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겠는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는 못하겠다. 그렇기에 그가 자신의 죄를 얼마나 처절하고 지독하게 '정당화' 하는지를 기대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내가 아버지를 죽인 날은 그늘 한 점, 음영 하나 드리워지지 않은 어느 밝은 날이었다.》라는 덤덤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만큼은 결코 그렇지 않은 문장으로 이 소설이 시작되어,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커피 마시며 신문을 읽었다 따위의 일상을 이야기하듯 차분하게 자신이 아버지를 살해하던 순간을 설명하는 주인공의 고백을 읽으며 나는 내 생각이 어느 정도는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물론, 그건 아니었다.
     
         이 글은 주인공의 독백과 심리 상담가를 상대로 이야기하는 부분이 교차되어 보여지는 1장과 3장, 주인공이 쓴 미완성 소설 '미래'를 담고 있는 2장, 이렇게 총 세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덤덤한 첫 문장과 제목처럼, 주인공은 ㅡ내 기억이 맞다면 끝까지 주인공을 비롯해 소설 속 등장 인물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ㅡ 대부분의 경우 흥분하지 않은 차분한 상태로 심리 상담가를 상대로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듣는 쪽인 심리 상담가의 말은 문장으로 표현되지 않고, 가끔 주인공의 말을 통해 언급될 뿐이기에, 나는 자연스레 심리 상담가의 입장이 되어 주인공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되는데, 이 주인공이라는 남자가 확실히 만만한 인간은 아니어서, '이야기를 해준다'는 입장에 있는 자신의 우위를 이용해 심리 상담가 ㅡ혹은 독자를 끊임없이 속이고 휘두른다. 급기야 그가 썼다는 소설을 읽어야만 되는 상황에까지 놓인다.

         그렇게 읽게되는 주인공의 소설「미래」는 고스란히 이 글의 2장을 차지하고 있는데, 소설 속 소설의 주인공인 '안토니무'는 아버지에 대한 감정, 하는 일, 결혼 생활 등의 대부분의 면에서 마치 주인공의 또 다른 자아와도 같은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런 개인적 설정 뿐 아니라, 그가 겪게 되는 일들이 결국 3장에서 언급되는 주인공의 삶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그 자신의 삶이 이 소설 속에 녹아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미완성으로 끝나는 소설의 마지막을 마치 주인공이 실제의 행동으로 완결지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존속살해범을 상대로 심리 상담을 하고 있는데 그 살해범이 자신이 쓴 소설이라며 읽어보라고 권한다면, 게다가 그 소설 속 주인공이 그 살해범과 놀랄 정도로 비슷하다면, 주인공이 자신을 투영한 소설 속 인물을 창조했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거 아닌가. 하지만 주인공이 자신의 소설 속에 또 다른 자신을 창조했느냐 어땠느냐보다 '중요해 보이는 것'은 이 소설 속 소설에 등장하는 몇 가지 키워드다. 도스토예프스키의「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든가, 안토니무가 홀로 고뇌하다 결론을 짓는 신과 선과 악과 정신과 인간에 대한 정의들, 이 그 것이다. 존속살해, '악'을 행하도록 '자유의지'를 부여받은 인간 따위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주인공이 안토니무이고 안토니무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점점 뚜렷해져간다.

         하지만 어쨌든 주인공은 의사와 판사들의 판단에 의해 정신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상담 중인 인물이다. 그가 차분하게 늘어놓는 말들은 가끔은 모순적이고, 가끔은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있었던 일처럼 진지하게 한참 이야기를 해놓고서는, 상상이라는 말 한마디로 듣는 이를 바보로 만드는 일도 다반사다. 주인공은 확실히 어딘가 불안정해보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는 '어린 시절부터 어떤 특별한 이유를 댈 수는 없어도, 그리고 무슨 특별한 능력이 있는지 알 순 없었더라도 자신이 남들과 다르고 특별하다고 느꼈'던 안토니무와 마찬가지의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p. 165) 그러니 독자의 입장에서 2장을 읽고 나서 머릿 속에 정리해 둔 갖가지 생각들을 몇 마디 말로 가볍게 부술 수 있는 것이다, 이 남자는.

         그리고 이어지는 3장은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했던 1장보다는 좀 더 가까운 과거의 이야기다. 기나긴 터널을 거쳐서, 어째서 이 남자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는 지 알 수 있는 이야기다. 이미 나로서는 드물게도 내용 자체에 대한 언급이 굉장히 많은 글이 되어버린 터라, 결말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마지막 부분에 대해 자세한 언급은 안하겠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주인공과 싸우는 듯한 기분이 되어본 것은 굉장히 드문 경험이었던 것 같다. 글을 읽으며 내가 생각한 것을 이미 쓰여진 활자에게 반박당하고, 다시 반박하는 기분이 되어보기도 하면서 어떤 의미로는 꽤나 즐겁게 읽을 수 있던 책이었다. 결국 누가 승자였는지는 비밀이지만.

    * * *

         마지막으로 조금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번역과 미처 교정 과정에서 발견되지 못한 듯 보이는 문법적 오류들이 종종 눈에 띄어서 신경이 쓰였던 부분이 있었다는 것도 언급해두어야겠지.

         
      
    내가 아버지를 죽였다 - 8점
    마리오 사비누 지음, 임두빈 옮김/문학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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