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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문학의 숲 '인간실격' : '이제 나는 완전하게, 인간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읽는다/독서 감상문 2011. 3. 17. 22:12



    2011. 011.
    인간실격
    세계 문학의 숲 005 : 人間失格
    다자이 오사무 지음ㅣ양윤옥 옮김
        

         문학 작품을 읽을 때에, 그 글을 쓴 사람에 대해서 항상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다자이 오사무의 경우는 그의 주요 작품들이 대부분 그의 자전적인 부분을 반영하고 있기에 작가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하는 필요성이 생긴다. 그리고 그 것은 읽어야 할 글이 <인간실격>일 경우 더더욱 그렇다. 세계 문학의 숲의 네 번째 작품으로 읽게 된 <인간실격>은 이미 한 번 읽었던 경험이 있는 글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처음 접하는 소설을 읽기 전과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기대가 컸는데, 그건 내가 예전과 다르게 좀 더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에 대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내 기대는 들어맞았던 것 같다. 

    * * *

         이 소설은 액자식 구성을 하고 있다. 우선 글의 가운데에 배치되어 있는, 세 장으로 구성된 수기가 본편에 해당하고, 그 수기의 앞 뒤로 이 수기를 책으로 발간하게 한 인물의 이야기가 첨부되어 있는 형식이다. 그리고 그 짧은 머릿말에서는 동일한 한 남자를 찍은 세 장의 사진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 사진들은 각각 그 수기를 쓴 남자 '요조'의 모습으로, 세 장으로 나누어진 수기의 각각의 장과 맞물려 있다. 얼핏 보기엔 귀여워 보이지만 섬뜩함이 느껴지는 아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미모를 가진 청년, 아무런 존재감도 느껴지지 않는 백발의 남자. 이 전혀 다른 느낌의 세 장의 사진 속에 찍혀있는 한 남자의 수기가 바로 이 소설 <인간실격>이다.

         하지만 사실 <인간실격>은 정말로 작가 다자이 오사무 본인의 '수기'라고 해도 괜찮을 정도로 그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글이다. 물론 다자이 오사무는 본래부터 자기 자신의 경험을 본인의 작품에 자주 언급하는 성향의 작가기도 하지만, 그의 마지막 완성작인 <인간실격>은《부끄러운 일이 많은 생애를 보내왔습니다.》로 시작해《나는 올해 스물일곱 살이 됩니다. …대개 마흔 넘은 나이로 봅니다.》로 마무리되어, 그야말로 '유서'와 같은 느낌을 준다. 실제로 다자이 오사무는 이 글이 연재되던 중간에 원고만 완성해둔 채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무리했으니 그런 느낌은 어찌보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서로 사기를 치면서도 다들 이상하게 아무 상처도 입지 않고 서로 속이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실로 훌륭한, 그야말로 맑고 밝고 명랑한 불신의 사례가 인간의 삶에 가득한 것입니다.
    ㅡ p. 26

         불행. 이 세상에는 온갖 불행한 사람들이 있다, 아니, 불행한 사람들만 있다, 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겠지만, 그래도 그 사람들의 불행은 세상을 향해 당당히 항의할 수 있고 또한 '세상'에서도 그 사람들의 항의를 쉽게 이해하고 동정해줄 것입니다. 하지만 나의 불행은 모조리 내 죄악에서 나온 것인지라 어느 누구에게 항의할 도리도 없고, 또한 우물우물 한마디라도 비슷한 소리를 한다면 딱히 넙치가 아니더라도 세상 사람들 모두 어떻게 그런 뻔뻔한 소리를 하느냐고 어이없어할 게 틀림없습니다.
    ㅡ p. 124

         어린 시절의 가면과도 같던 삶을 거쳐, 타인과 세상을 불신하고 두려워하던 '요조'. 한 여자와 동반 자살을 시도했지만 자신만이 살아 남았다는 죄의식을 안고 살아가는 주인공. 술에 의존하는 자신을 바꾸기 위해 되려 약에 손을 대다 결국 정신병원에 수용되는 그의 모습은 실제의 다자이 오사무와 고스란히 닮아 있다. 실제로 작품 속 요조의 마지막 문장처럼 다자이 오사무 또한 스물 일곱 살이던 시절에 정신 병원에 수용되었었는데, 당시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는 그 느낌을 <인간실격> 속에서 이 글의 제목이기도 한 '인간실격'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한다. 물론 수용소에서 벗어난 뒤로 수많은 작품들을 써내고 왕성한 활동을 했지만, 간간히 언급되는 당시의 이야기들, 아직 쓰지 않은 <인간실격>이라는 작품에 대한 언급 등은 다자이 오사무가 이 작품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짐작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렇게 <인간실격>은 읽고 있노라면 '어째서 일부의 소설가들은 작중 인물이 되려는 기묘한 충동에 휩싸이는 것이냐'며 신랄한 어조로 다자이 오사무를 비판했던 미시마 유키오가 절로 떠오를 정도로 주인공 '요조'와 작가 '다자이 오사무'를 동일시하게 된다. 하지만 이 소설에는 또 하나의 '나'가 존재한다. 수기를 쓴 인물, 그러니까 '요조'를 아무렇지도 않게 '광인(狂人)'으로 부르는, 냉정한 관찰자이자 이 수기를 책으로 펴내기로 결심한 한 남자가 말이다. 극과 극이라고 해도 어울릴 법한 '요조'와 '나'는 과거와 현재 혹은 미래의 다자이 오사무를 각각 반영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의 다자이 오사무가 어떤 생각으로 이 글을 썼는지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고, 그가 자기 자신을 토해내듯이 '요조'라는 인물을 만들어내고 세상에 펴내는 것을 통해, 냉정한 제 3자 '나'의 시선으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는지 어떤지도 아마 그렇지 않을까.  


    인간실격 - 8점
    다자이 오사무 지음, 양윤옥 옮김/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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