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소중한 사람(折り梅, 2011) : 지금의 나와 당신이 봐야하는 영화.
    본다/영화를 봤다 2011. 9. 18. 16:19

    소중한 사람
    折り梅, Oriume, 2002











         알츠하이머. 흔히들 치매라고 하는 그 병이다. 요즘은 젊은 층의 사람들도 걸리는 경우가 제법 있는 병이지만,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츠하이머에 걸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서신 분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리고 이 영화, '소중한 사람'은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어머니와 그런 시어머니를 모시는 며느리, 그리고 그녀들의 가족 이야기다.

         그런데 왜 이 포스팅의 제목이 '...봐야하는 영화' 냐고? 본래 그 어떤 영화 감상문을 써도 남들이 꼭 봤으면 좋겠다고 글을 쓰는 경우가 없는 나로선 드물게도 강한 추천을 담고 있는 제목이다. 하지만, 정말로, 이 영화는 다들 한 번 정도는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제목을 달았다. 어째서, 인지는 글을 풀어가면서 조금씩 언급하겠지만, 정말 이 영화는 봤으면 좋겠다, 누구든지. 내가 무려 1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를 이제와서 볼 수 있게 되고,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현실에 안타까워하고 있는 건 아쉽지만 말이다.

         영화는 홀로 살고 있는 마사코(요시유키 카즈코)가 마을을 떠나는 이웃에게 줄 도시락을 싸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정성스럽게 싼 도시락을 작별 인사와 함께 건네받은 마사코의 지인은 마사코에게 말한다. 아들이 함께 살자고 할 때 못 이기는 척 하고 가서 함께 살라고.
         마사코를 모시고 살려고 하는 것은, 마사코의 셋째 아들 부부다. 유난히 어머니를 따르는 막내 아들 유죠(토미스 마사)는 아내 토모에(하라다 미에코)의 동의를 구해 홀로 지내는 어머니를 모시기로 결정한다. 여전히 정정한 마사코와 함께 살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토모에의 집안일도 줄어들게 되고, 여러모로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그렇게 그들은 함께 지내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징조는 마사코가 끊임없이 손바느질로 행주를 만드는 것으로 드러난다. 괜찮다고, 그만 하시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마사코는 찬장에 행주가 잔뜩 쌓여있는데도 계속해서 만들어 토모에에게 쓰라며 건네줄 뿐이다. 아르바이트 동료에게 건강하다가도 갑작스레 사는 환경이 바뀌거나 하면 알츠하이머가 올 수 있다는 말을 들은 토모에는 혹시 마사코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하며 남편에게 말을 꺼내지만, 유죠는 그저 당신이 알아서 하라며 건성으로 대답할 뿐. 마사코 또한 자신은 멀쩡하다며 자신을 병원에 데려가려는 토모에가 자신을 구박하고 괴롭히려 한다고만 생각한다. 그래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마사코는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게 된다.

    병에 걸린 사람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만큼 밝은, 마사코.

         그 후로는 고난의 연속이다. 매일같이 회사일에 시달려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온 유죠는 알츠하이머 증상을 보이는 마사코에게 버럭버럭 화를 낼 뿐이고, 손자는 마사코가 말을 걸면 무시하고 달아나기 일쑤. 토모에는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노력하지만 날이 갈수록 심술궂어지는 마사코에게 지쳐간다. 어머니가 병에 걸렸다는데도 연락 한 번 없는 형제들도 그렇지만 토모에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마사코다. 토모에가 일을 하는 사이 집에 방문하는 자원봉사자들과는 살갑게 행동하면서도 유난히 토모에가 있을 때엔 일을 저지른다.
         결국, 토모에 부부는 마사코를 요양원에 보내기로 결심한다.

         여기까지 흔하디 흔한 이야기 중 하나에 불과했던 영화는 크게 반전한다. 자신에게만 심술궂게 군다고 생각했던 마사코가 그저 원망스럽던 토모에가 진심으로 마사코와 가까워지기 시작하는 것도 이 시점이다. 마지막, 헤어짐을 앞에 두고 그제서야 진심을 느끼게 되는 것. 그리고 이 가족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사코 본인이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래야만 그 다음 한 발을 내딛을 수 있는 것이니까. 예비 감상자들을 위해 어떻게 이 가족이 다시금, 아니 처음으로 진짜 하나의 가족으로 뭉치게 되는지는 언급하지 않겠다. 이 감상문에선 그저 그렇게 된다는 것만 말해두면 충분할 것 같기도 하고.

         단지 영화가 마사코와 토모에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어서 자세하겐 언급되지 않지만, 모든 걸 토모에에게 떠맡기고 나몰라라 하던 유죠의 변화도, 알츠하이머에 걸린 할머니가 무서워 그저 피하고 귀찮아하거나, 한발자국 떨어진 채 그저 관망만 하던 아이들의 긍정적인 변화도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가족 중에 몇 사람만 노력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또 영화 속에서 토모에는 가족 뿐만 아니라 근처 이웃들까지도 변해야한다고 말한다. 그저 손가락질하며 혀를 차는 이웃들의 시선까지도 바꿔나가야 마사코가 다시금 사회의 일원으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영화는 꽤나 이상적인 전개를 가지고 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마사코가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그러니까 알츠하이머에 걸리고 나서 깨닫고,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미술전에 입상할 정도로 그 재능을 발휘한다는 것 등이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가 어디까지나 픽션이라고 생각했다. 원작이 있다곤 해도 소설일거라고 생각했지, 실제로 알츠하이머에 걸린 시어머니를 모셔온 며느리의 간병일기일거라곤 몰랐단 거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실화였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그림들도 전부 실제의 마사코 할머니가 그리신 그림이라고 하고.

         물론 이 이야기가 실화라고 해서 알츠하이머에 걸린 사람들이 누구나 마사코처럼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고, 그걸 찾아낼 거란 얘긴 아니다. 단지, 알츠하이머에 걸렸다고 해서 그 사람이 가진 모든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게 중요하다. 마사코의 경우가 극단적으로 긍정적인 예에 불과할 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판타지와도 같은 영화가 의미가 있는 것은 알츠하이머,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쓰는 표현으로 치매에 걸린 사람이라고 해도 아무것도 못하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실상, 우리는 알츠하이머에 걸리지 않아도, 그저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 사람이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쉽게 부정하면서 살고 있지 않나. 나이가 들어도, 알츠하이머에 걸려도, 사람의 가능성을 부정하기엔 여전히 이르다는 걸 아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영화는 인상적인 마지막 장면을 보여준다. 무어라 설명하기 힘들지만, 차분함과 웃음과 안타까움과 슬픔이 한데 어우러진 엔딩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걸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한, 토모에의 모습은 당분간 잊혀질 것 같지 않다. 내가 하라다 상의 팬이어서만은 아니고. 하하.


         이 영화의 원제는 '折り梅 오리우메', 즉 '꺾어진 매화'란 뜻이다. 난 이 영화를 보며 처음 안 사실이지만, 매화는 껍질로 양분을 흡수해 살아가는 나무라서 가지가 꺾여도 꺾어진 채 살아남고, 고목이 되어 속이 텅 비어서도 껍질만 남아 있어도 살아남아 때가 되면 꽃을 피우는 나무란다. 영화 속에서 마사코는 말한다. 매화는 그토록 강한 나무라고. 나무 목에 어미 모가 합쳐져 만들어진, '어머니의 나무'라고. 그리고 영화는 보여준다. 오래되어 속이 텅 비어있는 거대한 매화나무가 그 어떤 다른 나무에도 뒤지지 않을만큼 풍성하고 아름다운 매화꽃을 피우고 있는 장면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너무나도 명확한 메타포가 아닌가 싶다. 속이 텅 빈 고목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마사코, 그런 고목이 다시금 꽃을 피우도록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껍질은 토모에를 비롯한 가족, 이웃들, 화려한 꽃을 피워낸 고목은 알츠하이머를 딛고 그림에의 재능을 꽃피운 마사코 그 자체다. 물론, 영화 상영 후 있었던 관객과의 대화에서 마츠이 히사코 감독도 그렇게 설명했고 말이다.

         그렇다면 한국 상영 제목인 '소중한 사람'은?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하하. 개인적으로 외화를 한국에서 상영하면서 제목을 바꾸는 걸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영화팬이지만, 이 제목, '소중한 사람'은 오리우메만큼이나 이 영화를 정확하게 관통하는 제목이다.

     * * *    

         부디 10년 후에 이 영화를 접할 이들은 이 영화 속 이야기가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것이었으면 좋겠다.

         임순례 감독이 재능기부 형태로 한국어 더빙을 연출했다고 한다. 난 솔직히 말하면 더빙판으로 외화를 보는 일이 드물달까, 없는데 이 영화를 보다 많은 이들이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더빙판을 만들었다는 설명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이 영화, 좀 많이 봤으면 좋겠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울컥했던 장면은 사실, 살갑게 말을 걸어오는 할머니를 무시하는 손자가 나오는 신이었다. 이유를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지난해 이맘때쯤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가 생각나서, 그래서 그랬던 것 같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