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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라진 소녀들 : 가장 약한 것도, 가장 강한 것도 사람이다.
    읽는다/독서 감상문 2011. 10. 16. 22:04



    2011. 000.
    사라진 소녀들
    BLINDER INSTINKT
      안드레아스 빙켈만 지음ㅣ서유리 옮김
        

         
    1.     처음 이 책에 대한 소개를 읽었을 땐, 이런 장르의 소설에 곧잘 등장하는 사이코패스의 이야기일거라고만 생각했다. 10살 남짓의, 붉은 색의 머리카락과 고운 얼굴, 옅게 흩뿌린 듯한 주근깨의 소녀. 게다가 앞을 보지 못하는 어린 아이. 이런 소설 속의 사이코패스들은 대개 특정한 대상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곤 한다. 그래서 나는 단지 그 사이코패스가 집착하는 대상이 저런 특징을 가진 소녀로구나,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조금 달랐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단순히 그 사이코패스적인 범죄 자체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그 범죄의 또 다른 피해자들 ㅡ쉽게 놓치기 쉬운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하나씩 하나씩 드러난다.

    2.      이 글은 그네를 타고 있던 한 소녀가ㅡ그러니까 앞서 언급한 특징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그 소녀가 정체 모를 사람에게 납치당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10년이란 시간을 건너뛴다. 다시 한 번 유사한 사건이 벌어지는 것이다. 또 다른, 앞을 보지 못하는 붉은 색 머리카락을 지닌 소녀가 사라져버린 것. 사라진 소녀의 이름은 사라. 10년 전, 그네를 타며 홀로 놀고 있던 소녀와는 다르게 사라는 비슷한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모여있는 보호시설에 살고 있던 소녀다. 하지만 이 어린 소녀는 철저하게 준비한 범인에 의해 납치당하고 만다. 10년 전의 소녀가 그러했던 것처럼.

    3.     이 소설의 제목처럼, 이 이야기는 사라진 소녀들에 대한 이야기이며, 사라진 소녀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라진 소녀 중 하나는 이 글의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인 막스의 여동생. 이 소녀가 바로 10년 전, 처음 사라진 소녀다. 10년 후, 여형사 프란치스카가 사라의 실종 사건과 끝내 범인을 찾지 못한 미제 사건이 되어버린 이 케이스의 공통점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겠지만, 그 우연은 막스의, 그리고 프란치스카의 인생에 있어선 필연적인 사건이 되어버린다. 우선, 막스다. 현재 권투선수로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있는 그지만, 사실 10년 전 사라진 여동생에 대한 죄책감이 늘 그를 짓누르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나타난 여형사가 그 때의 범인을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막스는 행동한다. 10년 간 자신을 내리누르던 '그것'을 해결해야만 하기에. 그래서 그는 10년 간 결코 하지 않았던 많은 일들을 하게 된다.

    4.     반면, 프란치스카는 어떨까. 그녀는 유능한 형사다. 그리고 암에 걸린 아버지가 있다. 걱정스럽지만 걱정 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아버지가 신경 쓰인다. 그리고 막스다. 자신이 사건에 도움이 될까 싶어 괴로웠을 과거의 사건을 그에게 떠올리게 만들었다. 잊은 것이 아니라 고개를 돌리고 있었던 것 뿐인 그에게 10년 전의 과거는 한순간에 현재 진행형인 사건으로 되살아난다. 프란치스카 때문에. 막스의 사고는, 정말, 딱 10년 전의 소년으로 돌아간 것만 같이 단순하고 직선적으로 굴러간다. 그냥 뒀다가는 막스 자신의 인생을 망쳐버리게 될 듯 하다. 그래서 그녀는 이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 막스보다 빨리.

    5.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한 생각 중 가장 크고 짙었던 것은, 역시 가장 약한 존재도 가장 강한 존재도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사람은 때론 놀랄 정도로 쉽게 부서지고 망가져버리는 약한 존재지만, 반대로 믿기 힘들 만큼 강하고 또 강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한 인간의 양면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소설이었다, '사라진 소녀들'은.

    6.     사실 이 소설은 범인이 누군지를 궁금하게 하는 글은 아니다. 어찌보면 제법 명확하게 처음부터 혹은 어느 시점부터 범인은 정확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단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의 막바지로 다가갈수록 책장을 넘기는 손이 다급해지는 경험을 했다. 꽤 잘 읽혀지는, 그리고 매력적인 글이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한글판 제목이 '사라진 소녀들'이라는 것은 인상적이다.

    사라진 소녀들 - 8점
    안드레아스 빙켈만 지음, 서유리 옮김/뿔(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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