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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문학의 숲 '나사의 회전' : 그녀는 무슨 일을 겪은 것인가.
    읽는다/독서 감상문 2011. 4. 26. 23:35



    2011. 015.

    나사의 회전
    세계 문학의 숲 006 : The Turn of the Screw
      헨리 제임스 지음ㅣ정상준 옮김
        

          소설이라는 장르의 글이 초반의 수십페이지가 넘어갈 동안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지 못한다면, 그 글은 꽤나 진입 장벽이 높은 글이다. 그런 의미에서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은 상당히 높은 벽을 가지고 있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뛰어난 소설들이 그 서두에서부터 독자들을 그 매력에 빠지게 하진 못하고,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해서 매력적인 글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는 걸 생각한다면 이 소설, '나사의 회전' 역시 그 높은 장벽을 뛰어넘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소설 중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간단한 액자식 구성을 하고 있는 '나사의 회전'은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 보호를 받고 자라난 젊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글이다. 그리고 바로 그녀가 한 매력적인 신사에게 고용되어 ㅡ혹은 사랑에 빠져ㅡ 그의 어린 조카들의 가정교사로서 시골 저택이 있는 블라이에 가게 된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렇게 따스하고 목가적인 시골 저택과 천사 같은 아이들과 상냥한 가정 교사와 성실한 고용인들의 이야기라면 좋겠건만, 물론 그렇지 않다. '나사의 회전'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유령'이다. 물론 글을 읽다보면 이 유령들 혹은 심령 현상이 정말로 '실재'하는 것인지, 우리의 여주인공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에 불과한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지만, 어쨌든 그녀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 글을 읽어야만 하는 감상자들은 자연스레 '그들'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얼핏 보아도, 자세히 보아도 어쩐지 슬프고도 기이한 표지를 가진 '나사의 회전'은 여러가지로 흥미로운 글이다. 그리고 그 흥미로움들은 대개 '불분명함 혹은 흐릿함'으로 귀결되지만, 역시 가장 커다란 화두는 '유령들'이다. 과연 그 유령들은 실재했는가, 정말로 그녀가 의심하는 것처럼 사랑스러운 두 아이들ㅡ마일스와 플로라는 그 유령들과 접촉하면서도 그녀에게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완벽히 순진한 척' 연기를 했던 것일까, 사실은 그녀가 정신 착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의문들은 그리 길지 않은 이 글을 읽는 내내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의심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 우선 블라이에 머무는 모든 이들 가운데 실제로 이 유령들을 목격한 것은 오로지 그녀 뿐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 유령들이 그녀 혼자 있을 때만 등장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들과 함께할 때 또한 그녀만이 목격하고 반응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분명한 이유가 된다. 그리고 그 유령들은 그들이 아이들을 지배하며 악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그녀의 의심을 받고는 있으나 사실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생각할 수 있는 다양한 이유들로 이 글, '나사의 회전'은 끊임없는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이 책의 서두에 실려있는 '작가 서문'을 통해 헨리 제임스는 이 글을 통해 "독자가 악을 생각하도록 만들고, 그것을 스스로 생각하도록 하라. 그러면 너는 빈약한 상세한 설명에서 해방될 것이다."라는 말로서 그의 유령들이 어째서 구체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지, 그저 그녀의 머릿 속에서만 극악무도한 존재로 존재하는지와 같은 의문의 해답을 제시한다. 결국 그는 '나사의 회전'을 읽는 독자들이 그녀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마치 그녀처럼 ㅡ하지만 독자적으로 그 유령들로 인한 공포를 스스로 만들어내길 원한 것이다. 따라서 '나사의 회전'은 읽는 이가 얼마만큼 적극적으로 작가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이 글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만족도가 크게 좌우될 수 있는 글이 되어버린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불분명하며 흐릿하게 만들어낸 이 이야기의 여백은 감상자가 스스로 채워야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로 말할 것 같으면, 낑낑거리며 올라간 높은 벽 위에서 경사가 가파른 미끄럼틀을 타고 대번에 내려온 듯한 감각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처음엔 좀 힘들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책장을 넘기는 손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이다. 즉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쓰여진 글들은 그 흘러가는 의식에 제대로 올라타기만 한다면 제법 술술 읽어내려갈 수 있는데, 나는 성공적으로 그녀의 의식에 올라탈 수 있었다. 단지 글 자체가 가진 특징인지, 번역되는 과정에서 기인한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장황한 문장들이 조금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끝나버려도 되는 건가?' 라는 의문, 아니 충격에 가까운 감정을 준 결말 부분을 포함해서 '나사의 회전'은 제법 매력적인 글이었다.

    나사의 회전 - 8점
    헨리 제임스 지음, 정상준 옮김/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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