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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복 : '어떻게 했느냐'보다 '왜 했느냐'를 이야기하다.
    읽는다/독서 감상문 2012. 8. 14. 22:50


    2012. 000.

    잠복 張込み

    마츠모토 세이초 단편 미스터리 걸작선 1
      마츠모토 세이초 지음 ㅣ 김경남 옮김 
         

          
         내가 마츠모토 세이초를 처음 만난 것은 2004년, 그러니까 8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난 그 때 그의 소설을 읽었던 건 아니었다.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일본 드라마를 봤었다, '모래그릇'이라는 동명의 제목을 가진. 당시의 나는 지금보다 조금 어렸었고, 모래그릇이라는 작품이 주는 무게감에 짓눌려 결국 끝까지 보지 못했었다. 또 있다. 작가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드라마 중 하나인 '야광의 계단'이 그렇고, '검은 가죽 수첩'이라든가, '짐승의 길' 같은 하나같이 무거운 사회의 혹은 인간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는 다양한 드라마들을 통해서 나는 마츠모토 세이초를 만나왔다. 

         그래서 나는 종종 좋아하는 작가를 생각할 때, 그의 이름도 떠올리곤 했다. 그런데 사실은, 나도 새삼스레 깨닫게 된 일이지만, 마츠모토 세이초의 문장을 직접 읽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더라. 난 여태껏 그의 글을 영상화된 형태로만 접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장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는 대부분 그의 문장을 오롯이 살리는 형태로 만들어져왔기 때문이고, 그의 글은 영상화하기에 적합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만큼, 선명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를 좋아하는 작가로 꼽는 것은 좀 이상할까? 그래도 이 정도면 그의 스타일을 알고, 이야기할 자격 정도는 되지 않을까, 라고 나 자신은 생각한다.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내게 처음으로 문장을 통해 마츠모토 세이초를 만나게 해준 '잠복'은 여러모로 마츠모토 세이초스러움이 물씬 풍겨나오는 작품집이었다. 표제작인 '잠복'을 포함해 여덟 편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는 이 작품집은 '단편 미스터리 걸작선'이란 설명을 달고 있다. 하지만 정통 미스터리와는 다르다. 마츠모토 세이초의 소설들은 '사회파 미스터리'로 분류된다. 어떠한 사건이 존재하는 것은 같으나, 글이 나아가는 방향이 범인을 찾아 그 트릭을 밝혀내는 데에 집중하는 정통 미스터리와는 차별화된다. 

         물론 사건은 해결된다. 호흡이 긴 장편 소설의 경우 탐정 역에 해당하는 인물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문장이 이끄는 곳은 기발한 트릭이나 뒷통수를 때리는 듯한 반전 속의 범인 같은 것이 아니다. 숨겨져 있는 혹은 숨기고 싶은 인간의 본성ㅡ겉으론 순수해보이지만 속으론 음험하기 짝이 없는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은 마츠모토 세이초의 작품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다ㅡ은 물론이고, 사회의 부조리나 혼란스러운 시대상 속에서 그는 그가 만들어낸 인물들의 이야기를 주저없이 펼쳐낸다. '어떻게 했느냐'보단 '왜 했느냐'를 이야기한다. 특히 군더더기 없는 짧고 간결한 문장들은 지루함을 느낄 새도 없이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첫번째 수록작인 '얼굴'은 앞서 언급한 모래그릇이나 야광의 계단의 원형과도 같은 이야기였고, 네번째 수록작인 '투영'은 얼핏 검은 가죽 수첩이나 짐승의 길을 떠올리게 하는 사회의 부조리를 다룬 작품이다. 하지만 여덟 편의 이야기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일곱번째 수록작품이었던 '일 년 반만 기다려'였다. 흥미진진하게 읽어나가고 있다가 뒷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달까. 하하. 단편 소설이기에 간략한 소개도 힘들어 이렇게밖에 설명 못하지만, 아, 정말 괜찮았다.

         어쩌면 아서 코난 도일이나 애거서 크리스티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마츠모토 세이초의 미스터리는 조금 갑갑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눈이 휘둥그레지는 트릭 같은 건 그의 글 속에 없으니 말이다. 애초에 그는 "나는 전부터 추리소설을 좋아했지만 트릭 중심의 허무맹랑한 내용이 불만이었다"라고 말하는 작가 아니던가. 대신에 그는 트릭이나 술수보다는 범인(이라고 해도 된다면)의 동기나 사건 이후의 행동들을 통해 범인의 심리를 파헤쳐나간다. 가볍지만은 않은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면, 역시 마츠모토 세이초다. 

     

     
       잠복 - 10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모비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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