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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 : 가즈코의 삶에 빛이 있기를.읽는다/독서 감상문 2018. 10. 14. 20:27
사양斜陽 다자이 오사무 / 유숙자 옮김 다자이 오사무를 처음 알았던 건 중학생 때였다. 한참 일본 문화 콘텐츠들이 알음알음 유행하던 시기였는데, 그 때 보게됐던 드라마 제목이 이었다. 물론 소설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지만. 그 드라마 제목은 소설과 달리 인간과 실격 사이에 점이 하나 들어가 있었는데, 그게 저작권 때문이란 이야기가 돌았고, 그렇게 처음 다자이 오사무와 그의 대표작인 이란 소설을 알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중학생의 내가 읽기엔 조금 어려운 내용의 작품이지만 막연하게 요조라는 인물이 흥미로웠던 기억이 있다. 좀 더 나이를 먹어가면서 문득 생각날 때마다 반복적으로 읽었던 기억도. 그렇게 다시 그 책을 손에 들 때마다 소설도 소설이지만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게 되었고 요조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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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머리 여인 : 현대사에 녹아든 오래된 신화.읽는다/독서 감상문 2018. 8. 15. 21:40
빨강 머리 여인Red-Haired Woman 오르한 파묵 / 이난아 옮김 오이디푸스의 이야기가 비극적이라고 느꼈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일 운명을 타고난 아들이라니! 혹은 자신을 죽일 운명의 아들을 가진 아버지라니... 어린 마음에 뭐 이런저런 슬픈 생각을 했었겠지. 하지만 오이디푸스 신화를 원형으로 수없이 변주되어 온 이 아버지와 아들, 때론 그 반대의 이야기는 사실 비극이기보단 희극적이다. 어째서 그들은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나야 하는가? 왜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를 경쟁자로 여겨야만 하지? 게다가 그들 사이의 역학관계를 표현하는 상징은 철저히 타자화된 여성, 대부분의 경우 어머니이다. 그러니까 왜? 그래야만 하는 이성적인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야생 속 죽고 죽여야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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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 나이트 : 과거는 현재를 만들어간다.읽는다/독서 감상문 2018. 6. 17. 22:19
서커스 나이트サーカスナイト 요시모토 바나나 / 김난주 옮김 요시모토 바나나는 사실 내가 나의 이십대를 추억할 때 떠오르는 이름들 중 하나인데, 지금 생각하면 그저 너도 나도 읽길래, 어, 그럼 나도 읽어볼까, 하면서 집어 들었던 것이 '허니문'이었다. 그러니까 그 시기는 요시모토 바나나라든가 에쿠니 카오리 같은 일본 여성 작가의 담담하면서도 섬세한 문장들로 가득 찬 글을 읽는 것이 유행 비슷한 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들은 그 때의 나보다 지금의 내게 더 잘 맞는다. 그간 겪어낸 삶만큼 더 이해할 수 있으니까. 그래도 여전히 요시모토 바나나는 내 이십대를 상징하는 몇 가지 것들 중 하나이고,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넘겨 준 선물 같은, 그런 작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내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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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 피해자와 가해자가 걷는 길은 평행선일지도 모른다.읽는다/독서 감상문 2016. 9. 6. 23:41
악당悪党 야쿠마루 가쿠 / 박춘상 옮김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선한 외모의 배우 앤드류 가필드가 나오는 '보이 A'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범죄를 저질렀던 소년이 성인이 되어 사회에 복귀하고 난 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는 비록 가해자였지만 이제는 성실하게 살고 있는 그에게 또 다시 기회를 주고 말고를 대체 누가 결정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범죄를 저질렀지만 그 죄값을 치뤘다면 그 다음엔 사회가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이야기는 거의 완벽하게 배제된다. 답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보다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피해자가 진심으로 그를 용서했는지 어떤지는 가해자의 사회복귀에 그리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야쿠마루 가쿠의 '악당' 속에도 방향이 조금 다를 뿐 피해자가 배제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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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의 bifan :)본다 2016. 8. 7. 23:39
여느 때처럼 비가 쏟아지기도 했고,쪄 죽을 것처럼 무덥기도 했던, 2016년의 bifan :)20주년답게 보고 싶었던 영화가 정말 많았지만,스크린으로 재관람하고 싶던 영화들 몇 개와일본 영화 두 편으로 타협. 개인적인 bifan 개막작이었던 크리피.쿠로사와 키요시 감독의 밝은 미래를 참 좋아해서 골랐는데 괜찮았다.카가와 테루유키 덕분에 볼만했던 작품. 메멘토, 아메리칸 사이코, 벨벳 골드마인은 재관람 작품이었다.메멘토는 처음 봤던 그 느낌이 정말 그대로 되살아나서 좋았고,벨벳 골드마인도 비슷한 감각이었지만.아메리칸 사이코는 처음 봤을 때랑 느낌이 너무 달라서 당황했다.영화는 달라지지 않았으니, 내가 많이 달라진 거구나, 했지. 그리고 마지막은 테라포마스.애니메이션을 꽤 흥미롭게 봤던 기억이 있어서 고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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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모노레일 : 여섯 편의 흥미로운 타임리프 이야기.읽는다/독서 감상문 2016. 7. 3. 14:53
러브 모노레일 제 1, 2회 타임리프 공모전 수상 작품집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운 고집이지만 난 한 때 단편소설을 읽지 않았었다. 뭔가 부족한 것 같고 많은 것들이 생략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라고 변명해보지만 말 그대로 변명일 뿐이다. 나이를 먹고, 문학은 아닐지언정 짧게나마 문장을 쓰는 일을 하게 된 이후 그 생각은 달라졌다. 길지 않은 분량 속에 완벽한 기승전결과 설득력을 갖춘 짧은 글의 매력을 그제서야 알게 된거지. 바로 그 단편집인 '러브 모노레일'은 재미있었다. 공모전의 수상작품들답게 조금은 어설프면서도 신선한 느낌이 가득한 여섯 개의 글들이 마치 그 소재처럼 내 시간을 가지고 가버렸다. 시간을 의미하는 시계의 톱니바퀴와 표제작 속의 모노레일이 인상적으로 표현된 표지를 넘긴 후엔,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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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선생님 9~11 : 그의 모든 생각에 다 동의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기쁘다.읽는다/독서 감상문 2016. 4. 10. 22:41
스즈키 선생님 9 ~ 11 타케토미 겐지 / 안은별 옮김 드디어 스즈키 선생님의 마지막 권까지 읽었다. 9권은 전편에서부터 연결되는 학생회 선거 이야기의 마무리와 작가 스스로가 "연재 처음부터 대작이 될 예정"이라고 설명하는 문화제 이야기의 시작을 담고 있고, 이어지는 10권과 11권은 그 문화제 이야기를 전 페이지를 할애해 가득 담아낸다. 그 문화제 에피소드의 타이틀인 '신의 딸'은 작품의 마지막 에피소드이니만큼, 스케일도 크지만 생각할 '꺼리'도 많아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매번 하는 얘기 같지만, 책을 단순히 읽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속에서 이야기하는 내용, 던져주는 의문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을 만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서 역시 참 반갑고 고마운 만화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