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066.
에르메스 길들이기
명품 백으로 이베이에서 성공한 남자의 짜릿한 모험담
마이클 토넬로 지음ㅣ공진호 옮김
오래간만에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읽어버린 책이다, '에르메스 길들이기'. 소설이 아닌데도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펼쳐지는 이야기에 푹 빠지게 되는 '에르메스 길들이기'는 전직 헤어 / 메이크업 스타일리스트였던 마이클 토넬로가 우연히 가게 된 바르셀로나에 반해 이주를 결심하고, 그 곳에 정착해, 이베이를 통해 물건을 사고 팔다 '에르메스'를 알게 되고 '에르메스 리셀러'가 되어 전세계를 누비게 되며 겪게 되는 여러가지 일들에 대해 쓴 책이다.
사실 제목에도 등장하는 '에르메스'는 워낙 내가 명품이니 뭐니 하는 고가 브랜드 상품에 대해 잘 모르다보니 간신히 그 이름만 알고 있는 상태였다. 그것도 브랜드 자체에 대해 알고 있었다기 보단, 예전에 봤던 일본 드라마 '전차남'에서 전차남이 좋아하는 아름답고 우아한 여성을 '에르메스'라고 불렀기 때문에 알고 있는 거다. 하지만 그 덕분에 '에르메스'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 이미지를 파악하고 있기도 했다. 동경의 대상, 아름답고 우아한... 실제로 이 책을 통해 접하게 되는 '에르메스'는 그 이미지 그대로였다. 그렇게 저자인 마이클 토넬로는 쉽게 구하기 힘든 동경의 대상, '에르메스'의 상품들을 경매 사이트인 이베이를 통해 판매하는 '리셀러'로서 살았던 5년 간의 이야기를 한다. '에르메스'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던 시절부터, 웨이팅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도 손에 쥐기까지 최소 2년간은 기다려야 한다는 '버킨 백'을 하루에 두 세개씩 살 수 있는 '버킨의 왕'이 되기까지의.
이야기의 초반, 그는 이야기한다. 자기가 '에르메스'의 리셀러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에르메스의 인터넷 홈페이지가 아직 없었기 때문' 이라고. 자신이 바르셀로나가 있는 유럽으로 이주하게 되고, 이베이의 주요 고객이 미국인들인 것과, 미국 내에는 에르메스 매장이 별로 없다는 것, 스카프 등 특정 상품을 광적으로 수집하는 콜렉터들의 존재... 등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되어 어느 순간 마이클 토넬로는 '에르메스의 리셀러'가 되어 버린다. 처음엔 스카프 등의 악세서리들을 위주로 판매하던 그의 인생이 크게 변화하게 된 것은 '버킨 백'을 구할 수 없느냐는 한 여성에게서의 메일 한 통. 물론 그는 버킨 백이 뭔지조차 몰랐다. 나처럼. 말 그대로 그가 에르메스에 대해 배워나가는 만큼 나도 에르메스에 대해 배워나가며 책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더 흥미진진했을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버킨 백에 대해 알게 된 저자는 그동안 다녀온 에르메스의 매장들을 돌아다니며 버킨 백을 구매하려 하지만 전부 다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바로 이 때부터 그의 '에르메스 길들이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단순히 '에르메스 리셀러가 되는 법' 이라든가, '버킨 백을 사는 법' 으로 요약할 수 없는 것은 이 책 속에는 소설 속의 인물이 아닌 '현실을 살아가는 한 명의 사람'인 저자 마이클 토넬로의 삶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충동적으로 이주한 바르셀로나에서 소울메이트를 만나고, 이베이 경매를 통해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일을 겪고, 소중한 가족과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어렵지 않는 단어들로 솔직담백하게 쓰여져 있고, 이는 충분히 흥미롭게 읽힌다. 거기에 더해 '에르메스'의 상품 판매 원칙이나 매장 직원들의 모습, 그리고 그를 이용하는 저자의 모습을 통해 풍자를 느낄 수도 있다. 비록 에르메스의 상품들을 되팔아 돈을 벌고 있지만, 그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그 에르메스라는 아이러니가 재미있는 것이다. 아마 그래서 여전히 에르메스를 비롯한 고가 상품들에 관심이 없고, 아직도 버킨 백 사기가 그렇게 어려운 지 어떤 지도 모르는 나지만 이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