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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문학의 숲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 텍스트를 '보다'.
    읽는다/독서 감상문 2010. 12. 14. 23:01

    2010. 065-1, 2.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세계문학의 숲 001, 002
      알프레트 되블린 지음 ㅣ 안인희 옮김
        


         1929년에 쓰여진 소설을 읽고 문화적 충격을 느꼈다는 것은 내가 여태까지 얼마나 한정적인 스타일의 글만을 읽어왔는지에 대한 증거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만큼 이 작품이 세대를 뛰어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다양한 세계문학전집들이 나오고 있는 와중에 시공사에서 '세계 문학의 숲'이라는 타이틀로 발간되고 있는, 총 100권으로 예정되어 있는 세계문학전집의 첫번째 소설,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이 바로 그 작품이다.
         독일 표현주의 문학의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알프레트 되블린의 대표작이기도 한 이 글은 소설이 쓰여진 1920년대의 베를린을 생동감있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있지만, 사실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영화의 화면을 텍스트로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묘사라든가, 명확한 스토리텔러 없이 등장 인물들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서술 기법이 아닐까.

         물론 이야기 자체도 꽤 흥미롭다. 불미스런 사건으로 가게 된 감옥에서 복역을 마치고 베를린으로 돌아온 주인공 '프란츠 비버코프'가 어떻게 1차 대전 후의 독일 베를린에서 살아나가는지, 성실하게 살아나가고자 했지만, 어째서 그럴 수 없었는지,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깨닫게 되어가는 과정을 '다소 불친절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이미 영화로도 여러차례 만들어진 만큼, 이야기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도 예사롭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전후의 베를린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가지각색의 삶의 방식, 그 당시 베를린 시내에서 볼 수 있었을 평범하면서도 독특한 모습들이 프란츠 비버코프의 삶과 시선을 통해 그려지고 있기에 이 글이 흥미로운 것 아닐까. 숨기거나 가리려들지 않는, 있는 그대로 시선에 와닿는 것들을 그려내고 있기에 더더욱. 물론 프란츠 비버코프가 흥미를 가지지 않은 것은 그냥 슥 지나쳐버리기도 하고, 흥미를 가지고 보고 있는 것은 몇 페이지씩 할애해 설명해주기도 하는 정도의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사실 그마저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확실히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은 '의식의 흐름'이나 '몽타주 방식' 따위의 서술 기법들이다.

         일반적인 소설처럼 주인공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나 싶더니 갑자기 당시 유행가의 가사나 성경구절 따위가 튀어나오고, 한참 사건이 전개되던 와중에 당시 베를린에서 볼 수 있었던 신문 기사라든가 광고문의 인용이 한 페이지 이상 이어진다. 주인공을 전지적 시점에서 파악하고 있는 듯 하다가 어느 순간 프란츠의 머릿 속에서 맴돌고 있는, 하지만 이야기의 큰 줄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잡생각들을 읽게 된다. 말 그대로 우리의 주인공 '프란츠 비버코프'가 이야기가 전개되던 그 순간에 들은 것, 본 것, 생각난 것, 무의식 중에 흥얼거린 노랫가사 따위가 그대로 텍스트로 옮겨져 있다고 생각하면 될런지도 모르겠다. 
        
    그것 뿐인가. 길을 걸어가던 등장인물을 보고 있는 줄 알았더니 그 등장 인물이 걸어가며 보게 되는 '모든 것'들을 나도 보게 된다. 신문을 사라고 외치는 소리, 물건을 사고 파는 이들 사이에 오고가는 흥정, 길 한켠에서 벌어지는 말다툼 따위의 것들을 말이다. 그러한 것들이 어떠한 설명도 없이 동시에 쏟아지듯 그려진다. 영화 속에서 길거리를 찍은 장면을 보면 왜, 그렇지 않은가. 다양한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 동시에 눈에 들어오고 파악을 하게 되는, 그런 화면을 텍스트에 옮겨버린 거다.

         솔직히 말하자. ...읽는 데 정말 힘들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따라가기 힘들었다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읽기 시작한 초반의 이야기지만. 어쨌든 쉽게 손에 잡을 수 있는 소설이 아니라는 생각은 지금도 그다지 변하지 않아서, 어째서 이 '세계 문학의 숲'의 첫번째 소설로 이런 어려운 소설을 선정한 것인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으니 이 정도면 내가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한 직후에 얼마나 당황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 싶다. 하지만 확실히 그러한 서술 방식에 익숙해지고나면, 그리고 이 소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어느 정도 전개되고 나면, 의외로 꽤나 즐겁게 읽힌다. 주인공인 '프란츠 비버코프'가 이런 행동을 할 때, 이런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구나, 이 시대의 베를린 거리의 풍경은 이러했구나, 따위의 즐거움까지도 느낄 수 있다.
          물론 즐거움을 느끼게 된 것과는 별개로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은 상당히 오래 걸린 게 사실이다. 보통 이 정도 두께의 책 두 권을 읽는데 걸리는 시간의 다섯 배 정도는 걸리지 않았을까. 하지만 확실히 힘들게, 시간을 들여서 읽어 낸 보람이 있는 소설인 것만 확실하다. 다 읽고나니, 세계 문학의 숲의 첫번째 작품으로 선정된 것도 그럴 법 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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