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을 보기 전, 국내 최초의 오토바이 액션 블록버스터라든가, '스피드'를 연상케하는 영화라든가, 와 같은 얘기들을 듣지 않았더라도 아마 나는 같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이 영화, 참 돈 많이 들어간 코미디 영화라고. 여기서 많은 돈은, 액수를 얘기하는 건 아니다. 코미디 영화에 돈이 많이 들어가면 안된다는 얘기도 아니고.
난 그저 어떤 장르의 영화든 꼭 이렇게 많은 돈을 굳이 써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영화가 안타까울 뿐인거다.
이 영화는 전직 폭주족이자 현직 퀵 서비스 직원인 기수
(이민기)가 정체불명의 사나이에게 협박을 받는 이야기다. 기수는 그의 지시에 따라 폭탄이 설치된 헬맷을 머리에 쓰고ㅡ정확히는 다른 사람에게 씌우고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기며 오토바이 질주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는 한국 최초의 오토바이 액션 영화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는 오토바이 액션들은 꽤 볼만했다. 단지 오토바이 자체보단 오토바이로 인해 일어난 사고 등으로 수십대씩 박살나는 차들의 모습이 더 압도적이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리고 기수를 조종해 폭탄을 배달시키는 정체불명의 사나이는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폭탄을 터트리겠다는 협박으로 자신의 음모를 착착 진행시켜나간다. 결국 어째서 기수가 협박당하고, 누가 폭탄을 설치했고, 왜 연이어 폭탄을 배달시키느냐, 같은 모든 핵심적인 질문들은 이 정체 모를 '사나이'에게로 모아진다. 실제 영화의 주인공인 기수조차도 그 사나이의 장기말,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다. 그렇지만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는 법. 보다보면 관객들도, 기수도 어째서 기수인지 알게 된다. 단지, 그 모든 과정에서 빠지지 않는 '코미디'적 요소들은 영화의 흐름을 뚝심있게 이끌어 나가야할 메인 캐릭터를 가볍게 만든다. 스토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애초에 힘이 들어갈 수 없는 스토리, 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기수 외의 또 다른 주인공은 기수가 폭주족이던 시절, 기수에게 차였던 전적이 있는 현직 걸그룹 멤버 아롬
(강예원). 다른 건 몰라도 정말 영화 속에서 이렇게 온 몸으로 사정없이 망가지는 여배우를 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혼신을 다해 망가졌던 여배우에 대한 안타까움은, 블록버스터급의 예산을 들여 화려한 액션 장면들을 만들어낸 코미디에 대한 아쉬움과 비슷하다. 멋진 장면을 만들어놓고 그에 대해 경탄을 하기도 전에, 감동을 받기도 전에 콩트를 진행시켜버리면 애써 만든 앞선 장면들은 뭐가 되나.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어쨌든 그렇게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개그 코드를 놓지 않고 끌고 나간다. 그 뚝심은 인정해줘야 할 것도 같다. 덕분에 이 영화, 아무 생각 없이 보면서 낄낄 웃을 수는 있는 영화니까.
하지만 정말 아쉽게도 단지 그것 뿐이다.
* * *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영화 촬영 현장 모습이 나온다. 수많은 액션 스턴트 장면이 있는 만큼 촬영하신 분들이 많이 다치셨더라. 그렇게 온 몸을 던져 열연하신 분들 덕분에 액션 장면들만큼은 확실히 임팩트 있는 영화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런 괜찮은 화면들이 그에 걸맞는 괜찮은 이야기와 함께였다면 정말 더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