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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2011) : 아직도 안봤나, 이 영화를.
    본다/영화를 봤다 2011. 7. 11. 23:55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

    X-Men: First Class, 2011

     

     






     

         그런 게 있다. 너무 좋으면, 뭐라고 얘기해야 될 지를 모르겠어서, 감상문이고 뭐고 못쓰겠는 그런. 하지만 그런 영화일수록, 감상문을 가장한 낙서 하나라도 끄적여두지 않으면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한다. 그래서 쓴다. 하지만 어쩌면 이 글은 그런 글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이 이야기와 이 이야기 속의 캐릭터들이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조금은 뻔뻔한 고백, 뭐 그런 거?
          어쨌든 이 글은 이제 개봉 7주차에 들어선 영화,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 대한 끄적거림이다. 그러니 스포일러는 주의바란다. 하하.

         이 영화는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엑스맨 시리즈다. 사실 원작 만화의 방대한 이야기와 다양한 캐릭터를 담아내기엔 울버린을 중심으로 한 엑스맨 3부작은 조금 아쉽다. 세 번째 작품인 '최후의 전쟁'에서 일단락이 지어지긴 했지만, 우선 울버린을 주인공으로 한 오리진이 첫번째 프리퀄로 만들어졌고ㅡ시리즈화가 예정되어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번 퍼스트 클래스는 엑스맨의 두번째 프리퀄 작품이다. 내가 듣기로는 퍼스트 클래스가 완성된 후 다시 본편으로 돌아가 이야기가 전개될거란 얘기가 있는데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팬으로서야 물론 계속 이어지길 바랄 뿐이지만. ('최후의 전쟁'은 마블 원작 영화들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다음 편 암시'를 위해서라도 봐 둘 필요성이 있다. 특히 찰스의 경우, 네 번째 작품이 만들어진다면 '젊어지고 걸어다닐 수 있을지도 몰라'.)

         어쨌든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여태까지 만들어진 네 편의 엑스맨 시리즈의 주인공인 울버린이 아니라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다. 그러니까 엑스맨 본편에선 양 극단에 선 채 대치하고 있는 이 두 남자가 각각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로 불리우기 전, 처음 만나 교감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영화다, 퍼스트 클래스는.ㅡ하지만 본편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찰스'와 '에릭'으로 부른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 영화를 더 이상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게 많이 봐놓고도. 보고 보고 또 볼수록 점점 더 하고 싶은 말은 사라지더라. 난 원래 엑스맨 시리즈의 팬이고, 그래서 처음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의 이야기를 다룬 '퍼스트 클래스'가 개봉했을 때 조르르 달려가 영화를 본 건 순전히 의리였다. 그런데 난 지난 6월 한 달간 이 영화에 푹 빠져서 살았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고, 약 한 달이 지난 지금에 와선 어떤 부분이 좋아서 그랬노라고 설명할 수도 없다. 난 그냥 좋았다, 이 영화가. 이 이야기가.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이. 그냥 좋았던 것 같다. 

    찰스

    에릭

         이 영화는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엑스맨'이라는 집단이 생겨나게 된 시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돌연변이를 뜻하는 '뮤턴트'는 물론 그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공식적인 존재'가 확인된다ㅡ는 설정이다. 그리고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한다면, 가장 가까운 동지였던 찰스(제임스 맥어보이)와 에릭(마이클 파스벤더)이 갈라선 채 각각 '프로페서 X'라는 이름으로 '엑스맨'을, '매그니토'라는 이름으로 '브라더후드'를 이끌게 되게 되는 이유를 그리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영화, 본편을 보지 않았어도, 엑스맨에 대해 전혀 몰라도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다. 물론 프리퀄이니만큼 본편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다면 이런저런 재미를 더 느낄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 영화는 되려 엑스맨을 모르거나 관심없던 이들이 이 영화로 인해 본편을 보게 만들 정도의 힘을 가진 괜찮은 작품이다. 제목 그대로 '퍼스트 클래스'랄까. 하하.

         그럴 수 있는 이유 중에 하나는 아마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이 바로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 사건이라서 일거다. 언제나 그렇듯 적절한 팩션은 작품에 보다 깊이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효과를 가져온다. 물론 지나치면 불편하지만, 퍼스트 클래스의 경우, 에릭의 복수의 대상이자, 찰스가 맞서 싸우려고 하는 세바스티안 쇼우가 어째서 핵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는지부터가 명확하기 때문에[각주:1] 억지로 끼워맞춘 듯한 불편함은 느끼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뮤턴트', 남과 다른 존재에 대한 고민들이 보다 원초적으로, 직접적으로ㅡ그리고 굉장히 극단적으로 제시된다는 점도, 또 본래 엑스맨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뮤턴트'들의 다양한 돌연변이 능력들이 등장한다는 점도 이 영화를 즐겁게 볼 수 있는 이유들이다.

         이하는, 스포일러가 가득한 그냥 끄적거림이다.

    엑스맨 시리즈를 관통하며 찰스와 에릭의 관계의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소품, 체스.
    [각주:2]

         하지만 역시 엑스맨의 팬으로서의 내가 이 영화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그리고 보다 끌렸던 것은 젊은 시절부터 그다지 변하지 않은 에릭보단 본편의 프로페서 X와는 전혀 다른 사람과도 같은 찰스였다.

         패트릭 스튜어트가 연기하는 프로페서 X는 벗겨진 머리에 늘 완벽한 수트 차림을 하고 휠체어에 탄 채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인물이다. 누구보다 상냥한 듯 보이지만, 그 누구보다 차가운 벽에 둘러쌓여 있는 사람. 타인의 속내를 알 수 밖에 없는 수많은 작품 속의 인물들과 비슷한 캐릭터에 가까웠다, 프로페서 X는. 누구보다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잘 알기에, 점점 더 자기 속에 갇혀버리는 전형성을 지녔다고 해도 틀리진 않을 거다. 하지만 퍼스트 클래스의 찰스는 다르다. 나이브(naive)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긍정적이고, 유쾌한ㅡ사랑스러운 청년이다. 무엇보다 사람을 믿을 줄 아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찰스가, 아니 프로페서 X가 안타깝다. 물론 본편의 프로페서 X도 여전히 사람을 좋아하고 아끼는 찰스의 모습을 지니곤 있지만, 그는 슬프게도 차갑고 쓸쓸하다.

         반면 어릴 시절 겪어야했던 고통과 슬픔으로 인해 혼자만의 세상에서 고독하게 살아온 에릭은 그가 소년이던 수용소 시절에서 조금도 성장하지 않은 어린아이 같은 면을 지니고 있다. 자신의 눈 앞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한 쇼우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살아온 에릭은 그를 위해서라면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 맹목성과 잔인성을 지녔다. 이는 시리즈 본편의 매그니토와 완벽히 일치하는 특성이다. 그래서 에릭은 서글프다. 자신을 망가트리고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한 원수에게 마침내 복수를 성공시키는 순간, 그가 오롯이 자신을 만들어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했으니까. 그의 복수는 끝나지 않는다. 유태인들을 핍박했던 세상, 뮤턴트를 괴롭히는 세상 그 자체가 그에겐 싸워야할 대상이라서. 쇼우는 세상을 향한 복수의 문일 뿐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에릭은 악당이 아니다. 찰스만큼이나 순수하게 자신들이, 뮤턴트들이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랄 뿐이다. 매그니토는 언제나 그 순수한 욕망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떼를 쓰는 어린아이, 라고 하면 이안 맥켈런 옹에겐 너무 무례한 표현일까. 하하.

         어쨌든 이 두 사람은 냉전시대인 1960년대에 처음 만난다. 세상에 뮤턴트들의 존재가 알려지기 전이다. 그리고 함께 동료들을 찾아다니고, 함께 싸운다. 찰스는 에릭을 '두고 갈 수 없고', 에릭은 찰스가 '자신의 옆에 있어주길 원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강한 연결고리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들은 '너무 달랐다.' 그래서 시작된 거다. 엑스맨과 브라더후드의 싸움이.

         솔직히 말하면 더 두드리고 싶은 내용들이 정말 많다. 찰스와 에릭에 대해서만 짧게 써놨지만, 다른 캐릭터들에 대한 이야기도, 본편과 엮여서 아마 이 글의 수십배 길이로 더 두드릴 수 있을 거다. 이 글 만큼이나 두서는 없겠지만. 하지만 그건 공개할 수 없는 글이 될 게 뻔하다. 사실 지금 이 글도 공개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니까. 그래도 열어둔다. 솔직하게 나 이 영화 좋아한다고 세상에 말해두고 싶다. 하하.

    * * *

         덧붙이자면, 지난 한 달 간 난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에 6번 다녀왔다. 이건 내 개인 최고 기록인데, 여태까지 그 어떤 영화도 세 번보다 많이 날 영화관으로 가게 만들지 못했었다는 걸 생각한다면 당분간 이 기록은 깨지지 않을 것 같다. 또, 사실 마지막 관람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고.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가지고 있던 엑스맨 시리즈를 처음부터 복습했고, 그 중에 2편은 두 번을 봤다. 앞으로도 계속 볼 거 같다. 아예 외우게 생겼다. 하하.


    1. 쇼우는 뮤턴트만의 세상, 혹은 뮤턴트가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한다. 그를 위해 뮤턴트들에겐 무해하나 인간들에겐 치명적인 방사능을 퍼트리기 위해 핵전쟁을 계획하는 것. 물론 그 핵에너지로 인해 뮤턴트들이 처음 생겨났다는 것도 이유다. 보다 많은 뮤턴트들의 탄생을 위해서. 다소 방식이 극단적이긴 하지만 이러한 세바스티안 쇼우의 사고방식은 매그니토에게 강한 영향을 끼친다. 에릭 스스로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대로 그는 정말 에릭의 'Creator' 인 것이다. [본문으로]
    2. 이 둘만 있을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체스. 상대방의 수를 미리 읽어야하는 두뇌게임인 체스는 찰스와 에릭의 성격 뿐만 아니라 이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소품이다. 읽을 수 있지만 하지 않는 찰스와, 읽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고 읽힌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알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찰스와 체스를 두는 에릭. (에릭의 이런 면에서도 맹목적인 어린애 기질이 드러난다.) 이런 두 사람의 모순적인 관계는 변하지 않고 이어진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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