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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자 (2011) : 누가 진짜 '음모자' 인가.본다/영화를 봤다 2011. 6. 25. 13:24
음모자
The Conspirator, 2010
*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실화를 그린 영화이므로 명확하게는 스포일러라고 할 수 없지만 어쨌든 영화 전개에 대한 언급이 비교적 상세히 되어 있는 편이니 주의가 필요한 글입니다.
좋아하는, 정확하게는 시카고에서 살던 시기에 좋아하게 된 역사적 인물 중 하나인 링컨 대통령의 암살을 소재로 그 뒷 이야기를 그려낸 영화라는 것도,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이 4년 만에 들고온 영화라는 것도, 현재 내게 '찰스 이그재비어'와 동일시되어 있는 제임스 맥어보이가 변호사로 나온다는 것도, 그리고 음모자(Conspirator)라는 제목조차도 전부 이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들었던 이유였다. 아, 그리고 물론, 실망하진 않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영화에 몰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미국의 남북전쟁 막바지가 배경이고, 링컨 대통령이 존 윌크스 부스라는 배우에게 암살당했다는, 널리 알려진 역사적 사건을 시작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아, 링컨 대통령, 하니까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서 제임스 맥어보이가 연기했던 찰스가 에릭과 함께 링컨 기념관의 링컨 동상 앞에서 체스를 두며 대화를 나누던 장면이 퍼득 떠오른다. 이쯤 되면 병이지, 싶다.) 하지만 실화를 소재로 하는 대부분의 영화가 그렇듯이 이 영화의 결말은 이미 역사적 사실로서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그러니 영화가 어떻게 전개되어 어떤 결말을 맺는지가 그다지 흥미로운 부분이 될 수 없다는 건 사실 조금 아쉽다. 하지만 그런 영화일수록 배우들의 연기가 영화의 완성도를 좌우한다는 것과 이 영화의 완성도는 꽤 훌륭한 편이라는 걸 생각한다면 이 영화, 꽤 볼만하다.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가면, 이 영화는 그 유명한 암살사건 이 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링컨 대통령의 암살자로 추격 끝에 사살당한 부스 외에 그의 공범자ㅡ영화 속에선 제목 그대로 '음모자'라고 불리는 부스의 공범들 중 유일한 여성인 메리 서랏(로빈 라이트)의 재판과정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여성이, 군사 재판에, 그것도 대통령 암살이라는 어마어마한 사건의 범인으로 회부됐다는 전대미문의 사건. 사랑하는 지도자를 암살이라는 비열한 수로 잃게 된 북부의 모든 사람들이 분노하고, 복수를 부르짖던 시기. 그 어느 누구도 그녀의 유죄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영화는 진행된다.
어디선가 레오의 향기가 느껴지는 제임스 맥어보이.
우리의 주인공 프레드릭 에이컨(제임스 맥어보이)은 그런 그녀의 변호를 억지로 떠맡게 된 북부군 장교 출신의 신참 변호사다. 하지만 북부군의 장교로서 4년간 복무하며 치열하게, 남부 병사들과 죽을 고비를 넘겨야 하는 전쟁을 치뤄온 에이컨은 자신의 적인, 링컨 대통령의 암살자들을 변호해야 하는 이유를 물론 찾아내지 못한다. 혹은 이유를 찾아내고 싶어하지 않거나,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왜? 그들은 링컨 대통령을 암살한 극악무도한 자들이고, 그녀 또한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변호사의 본분을 이야기하며 북부 출신의 에이컨이 그녀를 변호해야만 한다고ㅡ그녀에겐 그녀가 유죄이든 아니든간에 정당한 절차의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스승의 설득 아닌 설득에 에이컨은 그녀의 변론을 반쯤은 어거지로 승락한다. 물론 그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쨌든 절차에 따라 독방에 수감되어 있는 메리 서랏을 처음 만나게 된 에이컨은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설득해야만 했다.ㅡ그녀가 유죄가 아니라고 믿을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만 했다. 혹은 유죄라고 확신할 수 있는 무언가여도 상관이 없었을 거다, 그때 당시의 그에겐.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의 프레디는 점점 진실을 알게 된다. 그 진실은 그녀가 링컨 대통령의 암살에 가담을 했느냐 안했느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이 지독히도 불합리한 재판을 통해, 자신이 굳게 믿는 가치를 위해 묵숨을 걸고 싸우면서까지 지켜온 정부가,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지도자를 잃은 혼란을 한시라도 빨리 수습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죄가 있다고 확신할 수 없는 그녀를, 무작정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싸우기로 결심한다. 심지어 그가 구하고자 하는 메리 서랏조차도 그를 도우려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래서 이 영화는 프레드릭 에이컨이라는, 이상을 꿈꾸는, 변호사의 이야기인 것만이 아니라, 메리 서랏이라는 한 여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녀가 지키고 싶어하는 것은 에이컨의 그것과는 다르다. 에이컨은 자신이 동포를 죽여가는 전쟁을 치루면서까지 목숨을 걸고 지켜온 가치와 진실을 위해 그녀를 구하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희생양이 되어 처형당하는 한이 있어도 지키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녀는 묻는다. 목숨보다 소중한 무언가에 대해서. 에이컨은 물론 대답한다. 그리고 그 장면은,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이 영화를 관통하는 의미있는 신이기도 하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영화를 보고 있는 모두가, 어쩌면 영화 속의 모두들도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처럼 그녀가 꾸미고 있던 음모가 링컨 대통령의 암살 음모는 결코 아니었다는 거다. 하지만 '진실'이 어떻든 영화는 흘러간다. 지극히 현실적으로, 역사에 새겨져있는 것과 같은 방향으로.
* * *
그리고 왜 프레디는마치 찰스처럼마음 먹은대로 되는 일이 없나.솔직히 버린 게 아니라 '또' 버려진 거 아님?맥어보이가 연기하는, 좌절하고 짜증내고 화내는 모습을 보는 게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퍼클에 이어 2연타석 좌절OTL이라 참 안타깝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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