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스 코드 (2011) :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이야기.본다/영화를 봤다 2011. 5. 8. 13:03소스 코드
Source Code, 2011
이 영화는 더이상 기발하다고 할 수는 없는 소재,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머릿 속으로 들어간다거나, 과거로 돌아간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90여분의 러닝타임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진부하기보단 신선했고, 머리가 아프거나 복잡하기보단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건, 이 영화가 애초에 관객과의 치열한 두뇌게임을 즐기기 위해 ㅡ마치 인셉션처럼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의 타이틀이자, 이 SF 영화의 핵심인 '소스 코드'는 '타인의 8분 전으로 무한정 돌아갈 수 있는' 기술이다.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이해한 게 정확하다면 말이다. 그리고 사실 그게 다다. 소스 코드에 대해서 더 알아야 할 것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이고 그것들을 모른다고 혹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이 '드라마'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문제가 생기진 않는다.
이 영화의 마케팅 과정에서 언급되곤 하는 '인셉션' 은 관객들을 두뇌게임의 장으로 유혹하는 영화였고, 관객들은 영화가 제시하거나 숨겨놓은 코드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영화를, 아니 그 게임을 즐겼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우리는 '인셉션' 속의 룰들을 치열하게 고민해야했고 의심해야 했었다. 하지만 '소스 코드'는 다르다. 타인이 사망하는 순간, 특정 장치를 이용해 약 8분 간 남아있다는 그 타인의 뇌파 잔상으로 들어가 그 8분의 과거를 '가상'으로 다시 살 수 있다는 이 획기적인 기술은 우리의 콜터(제이크 질렌할)가 만들어가는 드라마의 계기가 되어줄 뿐이다. 그래서 러닝 타임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 인셉션의 세계에 대해 상세히 소개해야만 했던 크리스토퍼 놀란과는 다르게 소스 코드의 던칸 존스는 굉장히 압축적이고 불친절한 설명을 딱 한 번 하는 것에 그친다.
물론 소스 코드가 가지고 있는 몇 가지의 특징들은 콜터가 어째서 이 소스 코드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었는가, 라는 의문에 엮여 순차적으로 하나씩 하나씩 밝혀지지만, 그조차도 콜터 개인이 가지고 있는 미스테리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부가적인 정보들일 뿐으로 매우 흐릿하다. 하지만 관객이 알아야 할 것은 이 소스 코드는 한 사람을 다른 이의 8분 전 과거로 무한정 돌려보낼 수 있다는 것 뿐이다. 무한정.
그래서 보는 이들은 이 기술이 가진 가능성에 대해 놀라거나 감탄하기 이전에 잔혹함을 느끼게 된다. 비록 가상이라곤 해도 수십차례나 반복해 죽임을 당하는 월터가 안타까운 것이다. 어떤 기술인지, 그 목적조차 월터에게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 영화의 초반, 관객 역시 월터와 같이 정보 부족 상태에 놓여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소스 코드 속 가상 공간이 아니라 실제의 월터 자신이 놓여져 있는 현실에 대한 정보가 늘어난다. 어째써 월터인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 건지 등등. 하지만 역시나 나는 월터에게 감정 이입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물론 그것은 월터라는 캐릭터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봐야할지도 모르겠다. 결국 영화가 요구하는 것이 그것이었을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그렇게 이 영화는 소스 코드라는 소재 자체보다 드라마 속을 살아가는 캐릭터들의 힘이 더 크다. 월터가 그러하고, 굿윈(베라 파미가)이 그러한 것처럼.
하지만 확실히 이렇게 관대하게 이 영화를 받아들인 나도 마지막은 역시 좀 이해하기 힘들었다. 물론 그렇게 전개되리라고 예상은 했고, 그래서 그 전개 자체가 마음에 안든다거나 한 건 아니다. 그 마지막 장면들이 흘러가던 와중에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한 그 짤막한 대화가 마음에 걸린달까. 그 두 개의 문장이 소스 코드 자체에 대해 이해하려고 들기보단, 이 소스 코드라는 영화 속을 살아가는 캐릭터들의 드라마에 집중하고자 했던 내 뒤통수를 툭 치고 지나갔다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다.
* * *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직접 제작했다는 그 기차는 사실 나에게 있어서 굉장히 친숙하다. 몇 년 전 시카고 외곽에서 살았을 때, 딱 그렇게 생긴 복층 구조의 기차를 타고, 차장에게 표 검사를 받으면서, 점점 가까워져 오는 시카고 도심의 풍경을 차창 밖으로 바라보며 시카고에 가던 때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몇 차례나 언급되는 역의 이름들이나 몇 번이고 보여지는 풍경들이 실제 내 안에도 실재했던 과거의 기억 중 하나로 남아있기 때문에 어쩌면 더 이 영화가 내미는 손을 덥썩 잡을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본다 > 영화를 봤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파카바나 (2011) : 그래도 변하지 않는 관계, 엄마와 딸. (2) 2011.05.23 파이터 (2011) : 권투하는 형제의 이야기. (0) 2011.03.05 M (2007) : 이미지의 혼란 속에 빠져버리다. (4) 2010.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