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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즈키 선생님 1~4 : 옳다고 배웠던 것들이 과연 옳은 것일까.
    읽는다/독서 감상문 2015. 11. 30. 21:01

    스즈키 선생님 1 ~ 4




    타케토미 겐지 / 홍성필, 오주원, 송치민 옮김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때 별 다른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니, 그 때는 그 나름대로 흥미로운 작품일 거란 기대를 했었겠지만, 1권부터 4권까지 다 읽고 난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로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게 틀림없다. 일본의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스즈키 선생님이 그간 보아온 일본 드라마나 영화 속 열혈 교사들의 또 다른 복제품일 거라는 생각만 빼면 말이다. 정말로 나는 이 작품이 그런 일본 특유의 교훈과 해피엔딩을 품은 만화겠거니 했다. 하지만 그런 내 얄팍한 기대는 1권을 채 반도 보지 않은 시점에 와르르 무너졌고, 느긋하게 책장을 넘기던 손이 빨라졌다. 그만큼 스즈키 선생님이란 작품은 다소 자극적이었고, 생소했으며, 당황스러웠다. 다루고 있는 소재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날 가장 당황하게 만든 건 주인공인 스즈키 선생님이다. 그는 여지껏 내가 가져왔던 당연한 상식들, 교사의 모습이 과연 옳았던 걸까, 란 의심을 하게 만들었다. 비록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제목 그대로 스즈키 선생님이지만 그가 가르치는 중학교 2학년 아이들 또한 주인공이다. 때로는 아이들이, 때로는 스즈키 본인이 혹은 동료교사가 중심에 서 있는 가지각색의 에피소드를 통해 내가 가볍게 지나쳤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든다. 예를 들면 1권의 에피소드 중 '탕수육'을 보자. 학교의 급식 메인 메뉴에서 늘 절반 가까이 남는 탕수육을 제외하겠다는 결정이 내려지고, 스즈키가 담임을 맡고 있는 클래스의 한 학생인 가바야마는 그 사실에 충격을 받게 된다. 그녀는 탕수육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사소한 일이 교직회의는 물론, 스즈키로 하여금 전교적으로 탕수육을 빼느냐 마느냐에 관한 설문조사를 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나 많은 탕수육이 남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평균적으로 한 반에 4명 정도만 탕수육을 못 먹는다는 결과가 나오게 된다. 이러한 결과가 밝혀졌을 때, 난 무심코 '아, 못먹는 애들이 많은 건 아니니까 탕수육은 사라지지 않겠네'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작품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비록 4명 뿐일지라도 그 아이들이 먹지 못하는 메인메뉴를 급식으로 제공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라는 논의를 시작한다. 아차, 싶었다. 탕수육을 좋아하는 아이가 그 메뉴가 제외된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슬퍼하는 모습을 보는 건 안타깝지만, 앞으로도 계속 탕수육이 나온다면 전혀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되는 거였다. 다수결의 맹점이다. 다수가 찬성한다고 해서 그것이 옳은 것은 아니다. 사실은 알고 있던 것이지만 무심코 잊기 쉬운 그 사실을 뼈저리게 지적당한 기분이 들었다. 한 반에 네 명이나 먹지 못하는 메뉴보단 모두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메뉴가 당연히 더 나은 메뉴다. 또 4권 거의 전부를 할애한 중학생 간의 성관계에 관한 에피소드 역시 인상적이었다. 작중 다케치의 어머니가 이야기하는 일반론에 나도 모르게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후에 칼로 자르듯 스즈키가 그녀를 부정하고 나섰을 때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게다가 스즈키가 꺼낸 말들이 초반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의 주장을 끝까지 읽고나서, 그리고 다시 한 번 처음부터 작품을 읽고난 후에야 처음 읽었을 땐 보이지 않던 디테일한 묘사들이 눈에 들어오고 스즈키의 주장이 전혀 말이 안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아니, 어쩌면 그의 주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내가 옳다고 배워왔던 것들과 조금 다를 뿐. 사실 만화책을 보면서 내 사고방식의 근간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에 느끼는 당혹스러움 아닐까.   


         한편으로 이 작품은 스즈키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에게 연모의 감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나 스스로는 성인 남자가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을 상대로 그런 마음을 갖고 상상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끔찍했기에 스즈키를 보는 마음도 줄곧 곱지 않았다는 걸 고백한다. 사실은 아직도 그 부분에 대해선 스즈키를 이해한다거나 공감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어찌됐든 그는 스스로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흔들리고, 흔들리지만 그는 꿋꿋하게 아이들을 지도하고 자신을 추스른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교사의 모습이 있다. 그리고 되려 그런 스즈키의 모습을 통해 교사 역시 또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실수하고, 실패하고, 넘어지곤 하는, 그런 평범한 인간. 무조건 안된다고만 배웠던 내 중학교 2학년 시절에 만약 스즈키와 같은 선생님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무리 사소한 투정 같은 일이라도 진심으로 마주해주고,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해주는 완벽하지 않은 어른. 사실 중학교 2학년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것을 알고 다양한 것을 생각하고 있다. 내가 그랬었으니, 지금의 그들도, 앞으로의 그들도 그렇지 않을까. 부디 무조건 안된다고 하지 않고, 자격과 책임을 설명해주는 스즈키 같은 교사가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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