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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숨쉬어 : 어떻게 해서든 숨을 쉬어야만 했던 한 소녀의 고백.
    읽는다/독서 감상문 2011. 1. 27. 21:13



    2011. 003.
    숨쉬어
    Respire
      안 소피 브라슴 지음ㅣ최정수 옮김

        
          내가 이 소설을 처음 읽었던 것은 2004년 경이다. 지금도 낯설지만, 당시에는 더더욱 낯선 이름의 작가가 쓴 데뷔작을 아무런 고민도 없이 집어들었던 건 검은 색의 소녀가 서 있는 붉은 색의 표지와 '숨쉬어' 라는 제목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당시의 나는 무척이나 '숨 쉬고 싶어했었다.' 샤를렌과는 다른 종류와 방향의 억눌림이었지만, 벗어나고 싶어했고, 실제로 행동에 옮기기도 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담고있는 내용과는 별개로 내게 있어 조금 특별한 책이다. 올해 들어 문득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어졌던 것도 비슷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리고 물론 내 사정과 별개로, 이 소설은 18살의 소녀 샤를렌의, 그리 길지 않은 그녀의 과거와 그녀가 저지른 일에 대해 고백이다.

         이 글의 주인공 샤를렌은 '삶을 사랑'하고, '열광적으로 그것을 욕구'하는 지극히 평범한 소녀였다. (p. 17) 그녀를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남동생까지 단란한 가족에게 둘러싸여 물질적인 어려움 같은 것은 겪지 않았던 샤를렌. 물론 조금 유별난 점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떠한 그녀의 특징도 '비정상'이진 않았다. 그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소녀였다. 하지만 사람과의 사귐이 조금 서툴러서, 그만큼 한 번 마음을 연 상대에게 깊이 빠져버리기도 하는 샤를렌은 유년 시절, 그녀의 유일한 벗이었던 바네사와의 만남과 이별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버린다. 하지만 그 역시도 있을 법한 일이지 않은가. 주변의 또래 친구들이 전부 시시하다고 생각되는 시기. 나중에 돌이켜보면 그저 함께 놀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렇게 스스로 주변과 자신을 격리시키며 살려고 하던 샤를렌은 어느 날 자살 기도를 한다. 아무도 모르게. 실제로 실패로 돌아간 그녀의 자살 시도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의사도, 가족도. 단 한 사람, 사라를 제외하고 말이다.

         사라. 그녀는 샤를렌에게 있어 자신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반짝반짝 빛나는 매력적인 소녀였다. 말 한마디 나눠본 적 없던 그 소녀가 반친구들을 대표해 입원해있던 샤를렌을 찾아왔을 때, 샤를렌은 사라를 천사로 착각하기까지 한다. 그만큼 샤를렌의 인생에서 사라의 등장은 강렬한 충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매력적인 소녀는 샤를렌이 자살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내가 쇼팽 중학교에 처음 왔을 때부터, 너는 줄곧 내 호기심을 끌었어. 너는 혼자이고, 말이 없고, 무언가에 갇혀 있었지. 네가 불행하다는 걸 알아, 샤를렌. 분명히 그래. 너에겐 자아가 없어. 또 나는 네가 이렇게 병원에 있게 된 것이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 그건 사고가 아니었어. 그렇지?"

    ㅡ p. 50
         이렇게 샤를렌은 사라와 만나게 된다. 바네사가 떠난 이후 줄곧 아무도 자기를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자신은 혼자라고 생각하며 살아오던 샤를렌에게 사라가 곧 그녀의 전부가 되어버린 것은 물론이다. 샤를렌은 사라를 사랑했고, 사라를 필요로 했다. 처음엔 사라도 마찬가지였으리라. 하지만 샤를렌과 사라는 달랐다. 단 한 명의 친구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샤를렌과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자신의 매력을 끊임없이 확인받고 싶어하는 사라는 너무 달랐던 거다.

         사랑은 선(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 증오에 이르기까지 사랑하는 것, 그것은 자신의 명예를 희생하는 것이고,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고, 불가피하게 악(惡)을 행하는 것이다. 내가 사라에게 준 사랑, 그것은 비뚤어지고 고통스럽고 격렬한 열정이었다. 광기가 나를 갉아먹었다. 내가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 그것은 그 아이, 바로 사라였다.
    ㅡ p. 94
         샤를렌의 세계는 철저하게 사라를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자신이 사라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친구라는 명목 상의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고 그저 사라가 원하는대로, 사라에게 거슬리지 않도록. 사실 난 늘 사라에 대한 샤를렌의 감정이 광기 비슷하게 발전되어 나가는 시점, 그러니까 이 글의 절반 정도까지를 읽고나면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한다. 어째서 샤를렌이 이렇게까지 사라에게 얽매이고 집착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읽을 때 대개 사라의 입장에서 샤를렌의 행동을 바라보는 일이 많다. 어디까지나 이 글은 샤를렌의 고백이고, 철저하게 그녀의 시점에서 씌어지고 있기에 사라에 대해서는 샤를렌이 언급해주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샤를렌의 시선을 통해 보여지는 사라의 행동들을 생각해보면 사실 사라 역시 조금 얄밉기는 해도, 평범한 소녀다. 자신에게만 매달리고 따라다니는 친구를 언제까지 돌봐줘야 하는가. 다른 친구들과도 놀고 싶고 평범하게 남자친구도 사귀고 싶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사라는. 하지만 분명한 건 그녀 역시도 샤를렌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렇게까지 맹목적으로 자신을 숭배하는 대상이 있다면 그렇게도 되는 법이다, 아마.



    *


         결국 '숨쉬어'는 샤를렌만이 아니라 가장 예민한 시기인 사춘기를 함께 보낸ㅡ너무나도 다르면서도 비슷한 이 두 소녀의 이야기다. 어떻게든 치열하게 '숨쉬고자 했던'. 샤를렌이, 그리고 사라가 어떻게 되는지가 중요한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샤를렌이 어떠한 방식으로 어떻게 다시 스스로 숨을 쉬게 되던지간에 그녀의 선택을 내가 온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건 내가 이미 그 혼란스러운 시기를 벗어났기 때문인걸까.

    숨쉬어 - 8점
    안 소피 브라슴 지음, 최정수 옮김/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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