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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도 : 민란의 시대 (2014), 강동원의 조윤을 받아들이다.
    본다/영화를 봤다 2014. 7. 27. 20:59

    군도 : 민란의 시대

    KUNDO : Age of the Rampant, 2014





    * 스포일러 주의.




         솔직히 주제가 뭐든, 장르가 뭐든, 무슨 내용을 담고 있든 무슨 상관일까 했다. 그저 강동원하고 하정우가 한 화면에 나온다는 것만으로 보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기에, 개봉 다음날 조르르 달려가 보고 온 영화, '군도'. 거기다 더해 평소 애정을 갖고 지켜보고 있던 조 배우도 있잖아? 그러니까 솔직히 배우 한 명만으로도 기꺼이 내 시간과 돈을 바치는 내 입장에선 안 보고 넘기는 게 더 이상했던 영화다, 군도는. 


         결과적으로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을 보며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는 둘째치고, 난 이 이유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가치가 충분했었던 것 같다. 티켓값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는. 반대로, 만약 그렇지 않은ㅡ나 같은 타입이 아닌 사람이라면 조금 당혹스럽고 난감하면서 어쩐지 유쾌하지만, 그 이상으로 괴이한 영화를 봤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군도는 그간 보아온 사극들 중 하나로 정의하기엔 서부 활극의 느낌이 너무나도 강하고, 영화가 담고 있는 민란의 주제 의식을 따라 진중하게 각잡고 보기엔 가볍고도 엉뚱하다. 그렇다고 마냥 정신 놓고 보자니 돌무치가 도치(하정우)로 변해갈 수 밖에 없던 이유도, 조윤(강동원)의 속내도 그냥 흘러보내기엔 어딘가 찜찜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영화의 구성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었듯이 서너편의 애니메이션과 본편에서 패배한 것처럼 보였던 주인공들의 대반전을 그려낸 극장판으로 이뤄진 세트를 하나 본 느낌이 들었다. 본편에선 다소 껄렁하고 어벙해보이던 주인공일지라도 극장판의 마지막에 이르르면 비장하니 진짜 주인공다워지곤 하듯이. 그리고 이명세 감독이 '형사'를 통해 지나치게 훌륭하게 보여줬던 '칼을 든 강동원 활용법'을 한층 더 영리하게 써먹으며 무자비하다고 밖에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롯이 아름답던 강동원이 있었다. 


         '형사'에선 도를 사용했고, 말이 없었으며, 오로지 눈빛과 몸짓으로만 감정을 전달하던 '슬픈 눈'이었던 강동원은 군도에선 제법 다채롭게 변화하는 표정과 표독스러운 대화술, 그리고 음험하지만 여리디 여린 속내를 장착하고, 도보다 유려하고 화려하게 움직이는 검을 든 채, 상투가 잘려도 굴욕 한 점 없이 촤르륵 흘러내리는 비단결 같은 머릿결을 가진 '조윤'으로 변신했다. 사실 하정우와 강동원의 서로 밀리지 않는 팽팽한 무언가를 기대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결코 평범한 사람 혼자의 힘, 아니 다수가 모여 덤벼들어도 절대 꺾을 수 없는 권력자 그 자체를 상징하던 조윤은 내 의표를 찌르며 그 곳에 있더라. 그렇다. 애초에 팽팽한 맞대결은 성립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조선 시대, 그 어떤 발버둥을 쳐도 뛰어넘을 수 없던 신분의 격차와 태어나기 전부터 운명지어진 백정과 양반의 삶의 상징과도 같은 두 인물이었으니. 시종일관 유쾌한 유머를 덧씌우던 영화가 이렇게 뒷통수를 시원하게 때린다. 비현실적이라 느껴질 정도로 현실적인 벽. 영화는 그 지독한 진실을 조윤을 통해 오롯이 드러낸다. 


         게다가 백정의 눈으로 보기엔 똑같이 하늘 같던 양반 나부랭이겠지만, 그 안에서도 서얼이라는 자신의 태생이 씌운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몸부림쳤던 조윤이다. 마치 백정으로 주어졌던 삶에서 벗어나 치열하게 살아가는 도치와 조금도 다르지 않게.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으로 치닫던 그 순간, 조윤은 그리도 당당하게 선언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 자신이 이미 그렇게 했기에. 


         조윤과 반대측, 즉 도치를 포함한 화적단들도 참 매력적이다. 놀랍게도 꽃다운 청춘이었던 도치와 나이에 걸맞게 너 몇살이냐 나 몇살이다 따위의 유치한 투닥거림을 주고받던 천보(마동석). 그리고 그런 천보의 순정을 한 몸에 받던 마향(윤지혜)과 눈물 많은 지략가 태기(조진웅), 자신이 믿는 것을 위해서라면 살생도 마다않는 땡추(이경영)와 이들을 이끄는 여유로운 카리스마 대호(이성민). 이 외에도 참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이곳 저곳에서 불쑥불쑥 나타나 영화를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시작이 어쨌든 간에, 이들 또한 자신이 믿는 것을 위해 치열하게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이 글에선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혹여나 이 글을 밟을지도 모를 예비 감상자들을 위해 접어두기로 한다. 어쨌든 이들은 영화 자체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그려낸 인물들이니까. 


         사실은 그런 생각도 해본다. 웃음기 싹 빼고 비장함과 비열함만 흘러 넘치는 그런 영화였다면 과연 어땠을까. 악의 축으로 그려졌던 조윤이 먼치킨 급 끝판대장이 아니라, 도치의 2년 간의 노력만으로 이겨낼 수 있는 인물이었다면 난 과연 군도의 마지막을 보며 느끼지 못했던 그 통쾌함을 느낄 수 있었을까. 글쎄. 아닐 것 같다. 무엇보다 난 이 영화가 통쾌함을 느끼라고 만들어진 영화라곤 생각되지 않으니까. 이들은 그렇게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잃어가며 간신히 조윤을 쓰러트렸지만, 그는 고작 나주 지역 양반들 중 하나였을 뿐 아닌가.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을 거란 얘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을 착취할 또 다른 양반 나리와 나주 목사는 머지 않아 다시 나타날 것이 분명하단 얘기다. 


    * * *


    강동원의 아름다움은 단순히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섬뜩했다.




    군도:민란의 시대 (2014)

    KUNDO: Age of the Rampant 
    6.9
    감독
    윤종빈
    출연
    하정우, 강동원, 이경영, 이성민, 조진웅
    정보
    액션 | 한국 | 137 분 | 2014-07-23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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