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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주 (2016) : 크게 소리내어 울고 싶었다.
    본다/영화를 봤다 2016. 2. 18. 23:31

    동주

    DongJu ; The Portrait of A Poet








         정말로 그랬다. 사실 크게 소리내어 울고 싶었고, 하지만 그러지 못했고. 그래서 아직도 숨이 턱턱 막힌다. 부끄럽게도 난 윤동주를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라고 말해왔었고, 그런 주제에 그의 시를, 아니 그의 시어 하나조차도 마음으로 받아내지 못했었다. 그 부끄러움을 몰랐던 나는 부끄러운 존재였다. 뒤늦게나마 알았다한들, 이번엔 알고 있기에 부끄럽다. 이제야 어째서 그가 남긴 시들 속에 '부끄럽다'는 단어가 그리도 많았었는지, 조금, 아주 조금이나마 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실 이 영화를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 지 모르겠다. 난 동주와 몽규의 연표가 올라가는 걸 바라보며 조금 전보다 더 서럽게 울고 싶어졌었다. 엔딩에서야 색을 입고 빛나게 웃고 있는 동주와 몽규를 보며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영화관의 조명이 켜지고서도 한참동안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얼굴이 엉망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몇 번이고 울컥했다. 영화관에서 들려준 네 장의 엽서를 손에 쥐고 읽어내린 그의 시 네 편은 여태까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영화 속 교차 편집되던, 너무나도 달랐던, 아니 똑같았던 동주와 몽규의 대사가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이름과 얼굴만 간신히 알던 배우와 전혀 모르던 배우가 이제는 내게 윤동주를 연기한 강하늘과 송몽규를 연기한 박정민이 되었다. 그리고 이건 모두 영화가 아니라 내 이야기다.


    이 영화는 격렬하거나 극적인 역사의 어떤 장면을 담아내지 않는다. 혹은 재단하지 않는다. 저들이 악의 축이라고, 나쁜 놈들이니까 마음껏 욕하라고 판을 깔아주지 않는다. 그 누군가가 숭고하거나 아름다워 보이도록 치장하지 않는다. 그저 그런 시대에 조국이 아닌 곳에서 태어나 시를 쓰고 싶어했고, 이상을 위해 행동하다 죽은 두 청년의 이야기를 후쿠오카 감옥에 수감되어 자백을 강요당하는 동주의 회상을 통해 단편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그 속에서 동주는 몽규에게 자그마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고, 그저 시인 지망생일 뿐인 학생이고, 몽규는 항상 확신에 차 있고 영리하며,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에 거침이 없다. 만약 몽규의 시선이었다면 좀 더 극적인 사건과 전혀 다른 그들을 볼 수 있었을테지만, 이 영화는 그러지 않는다. 그리고 윤동주의 시가 있다. 장면 하나하나에 어울리는 그의 시들이 낭송되고, 흥미롭게도 조금도 어색하거나 낯설지 않았다. 심지어 시구가 그대로 대사로 옮겨진 장면에서조차도. 


    좋은 영화다, 잘 만들어진 영화다, 뭐 그런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냥 이건 동주라는 영화다. 내가 좋아하게 된 영화고, 앞으로도 좋아할 그런 영화다. 천만영화였으면 좋겠고, 오로지 나만의 영화였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으면서도, 나만 알고 나만 보고 싶은 그런 영화다. 부끄럽게도 그렇다.


    ***



    동주는 올해 들어 내가 본 아홉번째 영화다. 아마 열번째 영화도 될 것 같다. 

    내가 자주 가는 영화관이 이 영화를 제발 상영해줬으면 좋겠다.

    그 옆에 있는 영화관도 조조와 심야에만 걸지 말고 좋은 시간대에 상영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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