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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속임 그림 : 실재와 그림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화가들의 유쾌한 도발.
    읽는다/독서 감상문 2010. 11. 8. 21:37


    2010. 055.
    눈속임 그림
    트롱프뢰유, 실재를 흉내 내고 관객을 속이다

      이연식 지음
        

    부서진 벽인 척 하는, 부서진 벽을 그린 그림. (물론 안의 기둥도 그림이겠지.)

         본래 책 감상문을 쓸 때 그리 사진을 활용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 책만큼은 참고할 사진이 없으면 효과적으로 감상을 전달할 수 없을 것 같다. 위의 사진을 보자. 사실 나도 위의 '그림'처럼 건물 외벽이나 길바닥에서 순간적으로 깜빡 속아넘어가게끔 만드는 그림을 본 적이 있다. 무심코 지나가다 얼핏 눈에 들어왔던 그 그림은 그림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 같았는데,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나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그림이었다. 여하튼 이건 정확히 무엇이 그려져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제법 오래전의 이야기다. 당시에도 물론 신기하다고 생각을 하긴 했지만, 이번에 읽게 된 '눈속임 그림'이라는 책을 통해 처음으로 그러한 그림들을 일컬어 부르는 이름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그림의 역사가 제법 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그림들, 저렇게 실재를 흉내내며 그림이면서 그림이 아닌 척 하는 그림을 '트롱프뢰유' 라고 한다. 사실 이러한 트롱프뢰유는 그림을 그린다, 라는 행위의 근원적인 의미에서부터 출발한 화가들의 유쾌한 도발이자 진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예로부터 '그림을 잘 그린다' 라는 평가는 얼마만큼 '능숙하고 절묘한 솜씨로 인물이나 사물을 꼭 닮게' 그리느냐에 따라 갈려왔기 때문이다. (p 5) 어렸을 적 다녔던 미술 학원에서 죽어라 사과 데생을 했던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을지도 모르겠다. 하하. 어쨌든 이 책, '눈속임 그림'은 '트롱프뢰유' 라는, 미술에 관심이 없는 혹은 문외한인 사람이 보기에도 꽤나 흥미롭고 재미있는 장르[각주:1]의 그림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도록으로 실린 그림들은 대부분이 트롱프뢰유의 대표적인 작품들이니만큼, 직접 그림을 보지 않더라도 독자들이 깜빡 속아넘어갈 수 있도록 올 컬러로 수록되어 있고, 덕분에 나는 그림인걸 알고 보면서도 몇 번이나 눈을 의심하는 그림들을 볼 수 있었다.


    아드리안 판 데르 스펠트와 프란스 판 미리스, <꽃이 있는 정물>

         그런데 사실 트롱프뢰유는 그저 '꼭 닮게 그림'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란다. 보는 이들이 그림이라는 것에서 기대하는 것들을 살짝 빗나간 곳에서 실재와 그림 사이의 경계를 오가며, 순간적인 착각을 유도한다. 바로 위의 그림을 보자. 이 그림도 또한 트롱프뢰유인데, 과연 어느 부분일까. 꽃을 그린 그림은 못 그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실재하는 꽃이라고 착각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림의 1/3을 가린 커튼은? 커튼 레일까지 있는데, 설마 그림일까? 물론 정답은 그림이다. 커튼 레일부터 시작해서 마치 실재하는 커튼인양 하고 있지만. 이렇듯이 보는 이들이 그림일 거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것을 아닌 척 그려놓고 순간의 착각을 유도하는 것은 트롱프뢰유의 대표적인 기법이다. 사실 화가들이 트롱프뢰유를 통해 하고자 하는 게임은 감상자가 그 그림을 보는 순간 '살짝 착각'을 할지언정, 그 직후에 '그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성립하는 것이니까, 저렇듯 교활하게(!) 화가들은 보는 이를 '착각'하게 만드는 거다. 커튼이 쳐져 있으니 그 커튼을 걷어 그림의 나머지를 보려고 손을 뻗는 순간, 그 착각은 깨져버릴테니까.

         이렇듯, 이 책은 다양한 트롱프뢰유의 기법과 역사 등을 보기 쉽고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론 아직도 소리내어 발음해보면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헷갈리는 트롱프뢰유라는 생소한, 그러나 알고는 있던 미술의 한 장르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읽는 내내 즐거웠던 책이다. 사실, 책이기에 트롱프뢰유라는 그림들이 더욱 실감났던 것 같기도 하고. 책 속에서 저자도 지나가듯이 언급하지만, 사진에 찍힌 트롱프뢰유는 만져볼 수도 없고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도 없기에 더더욱 실재와 그림의 경계가 모호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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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르라는 표현이 맞을 지 모르겠다. 사조라고 하는 건 확실히 틀린 것 같아서 일단 장르라고 표현해봤지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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