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059.
사비성 사라진 미래도시
EBS 역사복원 대기획 다큐멘터리
이동주 · 김민태 지음
사라진 미래도시, 사비를 말하다.
천 년도 더 전에 지금도 쉽게 만들기 힘든 계획도시가 만들어졌다는 사실, 믿을 수 있을까? EBS의 다큐 프라임을 통해 방영되었던 3부작 다큐멘터리 '사비성 사라진 미래도시'를 정리해 묶은 동명의 책을 받아들고 가장 처음 한 생각이다. 아무리 우리의 옛 역사들이 상상 이상으로 찬란하고 대단했다고 한들, 아무 것도 없었던 땅에 도시 하나를, 그것도 철저한 계획 하에 바둑판처럼 잘 구획된 보기 좋은 도시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았던 거다. 정말일까.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기 힘든 백제의 마지막 수도, 사비는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수도로 계획되어 새로이 만들어진 도시였을까. 사실 그 시대에 살아보지 않은 이상 '확신할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최소한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가능성은 볼 수 있다. 세 번의 천도 끝에 역사 속 패자가 되어버린 백제이기에 철저하게 그 역사가 파괴되어 왔지만, 희미하게 남아있는 사비의 흔적들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책, '사비성 사라진 미래도시'는 그 우울한 제목과는 달리 근초고왕과 더불어 백제의 위대한 왕으로 일컬어지는 당차고 열정적인 군주, 성왕의 사비 천도를 다룬 EBS의 다큐 프라임을 책으로 구성해 발간된 것이고, 이 책 속에서 나는 그 가능성을 볼 수 있었던 거다.
읽기 쉬운 역사,
난 역사도 다큐멘터리도 참 좋아하지만, 사실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는 그것에 관심이 없는 이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가 어려운 장르다. 그런 의미에서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쓰여진 이 책과 다큐멘터리 '사비성, 사라진 미래도시'는 꽤 흥미로웠다. 나 같은 경우 먼저 책을 읽고 흥미가 생겨 다큐멘터리까지 시청을 하게 됐는데, 뭐랄까, 총 3부작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앞의 2부는 스토리텔링 기법을 한껏 활용하여 다큐멘터리라기보단 단편 사극 드라마 같은 느낌으로 제작되었고, 마지막 3부만이 기존의 다큐멘터리에서 볼 수 있는 현장 답사나 전문가들의 의견 등을 편집해 보여주고 있다. 책의 경우, 그런 다큐멘터리에 비해 비교적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느낌을 주긴 하지만 그래도 성왕을 주인공으로 한 역사 드라마 같은 느낌을 주는 전개만큼은 다큐멘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진실들이 역사 속에 묻혀있는 백제와 사비의 이야기를 상대적으로 자료가 풍부한 다른 시대의 이야기와 같은 방식으로는 할 수가 없었던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옛 서적을 뒤적여 간신히 두어줄 찾아낸 백제의 이야기들이 이렇듯 생생하게 살아날 수 있었던 것, 비록 상상일지라도 정말 그랬었을 법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것, 그 누구도 온전히 알 수 없는 과거의 역사를 재구성해내는 것들은 굉장히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정성이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더 이 책이, 이 책의 시작이 된 다큐멘터리 '사비성 사라진 미래도시'가 반갑다. 그들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졌지만 그게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건 이 책의 부작용 아닌 부작용이지만. 하하.
난 역사를 참 좋아한다. 6학년때 학급 문집에 쓰여져있는 내 장래희망이 고고학자인걸 보면 내 역사에 대한 관심은 꽤 오래된 것임에 틀림없다. 고3 시절 수능을 앞두고 사회탐구과목의 선택과목을 세계사로 선택한 사람이 전교에 나 밖에 없었던 기억도 있고... 그런 기억들 속에서 꽤 자주 접했던 질문 중에 하나가 바로 '고구려, 백제, 신라 중에 어느 나라를 가장 좋아하나' 혹은 '만약 신라가 아닌 다른 나라가 통일을 했다면 어떤 나라?"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나는 대부분 고구려, 라고 대답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다시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아마 백제라고 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요즘들어 부쩍 새롭게 조명받아 만나게 되는 백제는 매력적이니까. 흔히들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고들 하고, 역사 속 패자였던 백제였기에 숨겨지고 왜곡되어왔던 사실들이 이제야 조금씩 빛을 보고 있으니, 앞으로 더 밝혀질 백제의 숨겨지고 왜곡되었던 역사,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