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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즈키 선생님 5 ~ 8 : 세상은 옳고 그름으로만 나뉘어지지 않는다.
    읽는다/독서 감상문 2016. 2. 14. 21:16

    스즈키 선생님 5 ~ 8





    타케토미 겐지 / 이연주, 안은별 옮김







    이렇게 읽는 도중에도, 읽고 난 후에도 작품 내 논의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끔 만드는 만화책은 처음인 것 같다. 아니, 굳이 만화책으로 한정짓지 않아도 내가 읽고 접하는 책들 가운데에선 상당히 드문 일이다. 특히 내 자신이 평소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던 상식이 어쩌면 생각없이 수용한 편견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라고 내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해 내린 결론이라 믿고 있던 것들이 정말로 그랬던 것인지 의심하게 되는 일은 정말로 그렇다. 지난번 처음 이 스즈키 선생님이란 작품을 접했을 땐, 중학생들과 그 담임 선생님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가끔씩 잊어버리게 될 정도로 날 것 그대로의 표현과 소재에 당황스러워했었지만, 솔직히 이번엔 그렇지 않을 줄 알았다. 충분히 이 작품 속 캐릭터들에게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아니었다. 작중 스즈키의 표현에 따르면 '어른들끼리라도 보통은 불가능할 정도의, 정말 깊은 부분까지' 여과없이 끄집어 내는 일을 이 작품은 망설이지 않았다. (스즈키 선생님 7권, 스즈키 재판 -에필로그- 中) 


    이번에 읽게 된 5권부터 8권에 담긴 내용 중 가장 큰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스즈키 재판'이란 에피소드다. 결혼도 하기 전에 여자친구를 임신시킨데다 그 여자친구를 방학 중 업무인 '행사 순찰'에 대동하고, 입덧하는 모습을 자신의 제자들에게 들킨 스즈키 선생님은 교사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다. 학교에서 행하고 있는 피임 교육은 물론이고, 표면적으로만 보자면 평소에 자신이 제자들에게 역설해오던 것들과 모순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모습을 목격한 것은 평소 스즈키를 신뢰하며 따르던 나카무라와 오가와였다. 우선은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하고, 제자들에게도 충분히 상황을 설명해주려고 했던 스즈키였지만, 모든 일은 그의 생각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결국 반 학생들 전체 앞에서 '재판'에 가까운 추궁을 당하게 되어버리고 마니까. 


    이 과정에서 작가는 말 그대로 치열하고 솔직하며 다소 당혹스럽기까지 한 다양한 관점의 이야기들을 2-A반 학생들의 입을 빌려 토해낸다. 처음부터 하나의 주장을 기둥으로 잡고 끌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중구난방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다양한 의견이 쏟아져나온다. 당연하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으니까. 혼전임신이 옳은가, 그른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혼전임신을 했더라도 결혼하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전자의 사람에게 묻는다. 그 임신한 상대가 원래의 여자친구가 아니어도 괜찮은 것인가? 혹은 아무하고나 무책임하게 피임하지 않은 채 관계를 맺다가 덜컥 애가 생겼을 때 그 상대와 결혼하면 다 괜찮다는 이야기인가? 결혼은 했지만 등 떠밀려 한 결혼이기에 가정에 충실하지 않고 바깥으로 나돌아도 괜찮은 것인가? 또 결과적으로 좋은 남편, 아빠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되기 전까지 무책임하게 옳지 않은 일을 하고 다니는 게 정말 용인할 수 있는 일인가? 결혼하기 전까지 복수의 이성과 성관계를 맺는게 괜찮은 일인가? 그런 사람이 옳지 않다고 한다면 다른 면은 나쁘지만 성관계에 있어서만은 한 사람의 이성만 허락한 사람과 여럿과 관계를 맺었지만 다른 면은 훌륭한 사람 중 누가 더 나은가? 아이들은 하나의 발언이 나올 때마다 또 다른 관점에서 그 발언을 지켜보고 또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다시 맨 앞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그렇다면 혼전임신을 했지만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나쁜 사람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앞선 치열한 논의에선 전제되었던 그 답에 대해 아무도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현실엔 편모, 편부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들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많기 때문이다. 물론 그 부모들 가운데엔 정말로 무책임하고 나쁜 이들도 있겠지만 그 모든 부모들이 그렇다고는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 그렇게 아이들의 토론은 단순히 옳고 그름을 가리겠다는 이분법적 태도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난 아이들이 솔직하게 던지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같이 고민을 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어떤 의문에 대한 나의 생각이 다른 아이에게 반박당하면 당황하기도 하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지적당하면 놀라기도 하면서, 그렇게 마치 내가 스즈키 재판의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임장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재판의 대상이 된 스즈키는 아이들이 치열하게 난상토론을 벌이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그렇다. 이 이야기의 끝은 단순히 혼전임신이 옳은가 그른가에 대한 것이 아니다. 보다 넓은 시야, 열린 관점, 다양한 입장, 역시나 스즈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할 줄 아는 것을 아이들은 배워나간다. 


    ***


    거기에 더해 5권 초반의 청소당번 에피소드 역시 꽤나 인상깊었다. 

    학창시절의 내가 눈에 띄는 문제아도 아주 뛰어난 학력우수자도 아니었어서 그런가, 

    그런 평범한 학생들은 당연하게 혹은 자연스럽게 뒤로 돌려놓고, 

    문제아들의 케어에 몰두하거나 뛰어난 학생만을 편애하는 것처럼 묘사되는 

    다양한 학원물들에 다소 질려 있었는데, 바로 그 부분을 지적하고 있는, 

    이제 막 교사의 길에 들어선 스즈키의 과거를 다룬 에피소드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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