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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백한 잠 : 복잡하게 꼬인 관계를 걷어내면 보이는, 진실.
    읽는다/독서 감상문 2016. 2. 29. 00:21

    창백한 잠

    蒼ざめた眠り





    가노 료이치 / 엄정윤 옮김






    이 작품의 주인공은 폐허, '사람의 손길이 끊긴 채 남겨진 광경들에 매료되어 있'는 사진작가 다쓰미 쇼이치다. 불미스러운 사건에, 그것도 억울하게 연루되어 자신의 모든 커리어를 통채로 잃을 뻔한 상실에서 간신히 벗어난 사람이 폐허에 매력을 느끼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고, 그런 텅 비었지만 비어있지만은 않은 공간을 담아낸 사진집을 내려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게 다쓰미 자신의 사진집의 표지를 장식할 사진을 찍기 위해 작은 도시 다카하마를 찾는다. 하지만 그가 발견한 것은 머릿 속 이미지 그대로의 풍경이 아니라 한 여성의 시체였고, 이건 이상한 일이다. 살해당한 채 발견된 사람은 아이자와 다에코. 저명한 여성 저술가로, 다카하마 지역의 공항건설을 반대하는 환경보호운동가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다쓰미의 동료인 후지코가 사고 직전에 그녀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고, 다쓰미가 이 사건에 발을 들이밀 수 밖에 없게끔 이어지는 우연들이 착착 쌓여나간다.


    창백한 잠은 타지에서 온 사진작가가 약 9일간 자신이 발견한 시체와 얽힌 사건을 해결하는 작품이다. 얼핏 생각하면 그리 복잡한 전개는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단순해 보이던 살인사건의 배경에는 공항건설이라는 공공개발을 둘러싼 주민들 간의 대립이 섞여 들어가 있었다. 다쓰미가 처음 시체를 발견하고 신고했을 때 사건을 담당한 형사도, 피해자를 보고 엉엉 울어버렸던 남자도, 모두 피해자와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일만큼 좁은 인간관계는 그 숫자가 적은만큼 복잡하게 꼬여있다. 거기에 더해 공항반대파의 정신적 지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는 명망있는 도예가와 직접적으로 등장하진 않지만 지속적으로 작중 인물들을 통해 언급되는 일본 정재계에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던 이종원이라는 존재도 있다. 9일간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기엔 참 짙고도 깊은 과거들이 많이도 엮여있다. 모든 등장인물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이들이 들고 나가지는 않지만, 인물관계도를 그려보면 몇 안되는 인물 사이에 수많은 화살표들이 오고갈 그런 작품이었다.  


    물론 아무리 복잡하게 꼬였더라도 사건은 해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은 것 같은 갑갑함이 느껴지는 건 아마도 사건 외적인 부분 때문일테지. 앞서도 말했듯이 이 작품은 살인사건 뿐만 아니라 공공개발을 둘러싼 지역사회의 갈등을 담고 있고 그 옳고 그름을 논하진 않는다. 찬성이든 반대든 결국은 자신에게 있어 가장 유리한 태도를 취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결말은 그게 바로 인간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어쩌면 작중에서 살해당한 다에코의 전남편이자, 사건을 조사하는 다쓰미의 충실한 파트너의 역할을 수행하는 기자 안비루가 가장 솔직한 걸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난 잘 모릅니다. 아니, 다 큰 어른이니 이런 말투는 안되겠지요. 여러 사고방식이 있다는 건 나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중에 어떤 생각을 골라야 좋을지 결정을 할 수가 없어요.' (p.51)



    창백한 잠
    국내도서
    저자 : 가노 료이치(Ryouichi Kanou) / 엄정윤역
    출판 : 황금가지 2016.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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