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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원 (Guzaarish, 2011) : 스스로의 죽음을 '청원'하다.
    본다/영화를 봤다 2014. 5. 21. 10:58

    청원

    Guzaarish, 2010











         보통 영화를 보면 감상문을 꼬박꼬박 쓰려고 노력을 하는 편인데 그게 잘 안되는 영화들이 있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많은 경우는 '할 말이 없어서'다. 영화가 재미가 있건 없건, 마음에 들었건 아니건 간에, 어떤 영화는 정말 아무 말도 못하게 만든다. 투덜거림조차 하지 못하게 할 정도로 할 말 없는 영화는, 결국 마음에 들지 않는 영화이기도 하고. 


         그리고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할 말이 너무 많아서'다. 장면 하나를 되새길 때마다 새삼 느끼고, 생각하고, 또 곱씹다가 간신히 다른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한참동안 제자리 걸음. 그러다보면 어떤 얘기는 하고 어떤 얘기는 하지 말아야 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결국 나중에, 다음에, 하고 미뤄버린다. 이 영화, '청원'은 그런 영화였다. 아, 물론 이런 영화인 경우 제법 흥미롭게 본 영화인 경우가 많다. 


         사실, 그렇다. 청원은 소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논쟁적이다. 스스로 의사판단을 할 수 있는 자가 안락사를 '청원'하는 영화니까. 흔히 안락사 논쟁의 대상, 즉 안락사를 당하게 될 사람은 뇌사 상태의 환자인 경우가 많고, 그래서 논점 또한 가족 등과 같은 주변 인물들에 맞춰져 있곤 한다. 생사가 걸린 일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경우 그 치열한 논의에 뛰어들어 안락사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안락사를 당할 환자 본인이 아니라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청원은 흥미롭다. 


         자신의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이 남과 다르지 않은 한 남자가 있다. 14년 전, 마술쇼를 하던 중 사고로 사지가 마비되어 버린 천재마술사 이튼이 바로 그다. 그리고 이튼의 곁에는 14년 간 줄곧 자신을 바로 옆에서 간호해준 아름다운 여인, 소피아가 있다. 그들의 삶은 평탄해보였다. 누구보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이튼과 헌신적인 소피아. 하지만 어느 날 이튼은 말한다. 안락사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이튼은 죽기 위해 싸운다. 법정에서, 자신이 진행하던 라디오에서, 자신의 집 안에서조차. 그렇게 누군가 죽여주지 않으면 죽는 것조차 할 수 없는 이튼은 온 나라가 떠들석한 소동을 일으킨다. 


         이튼은 천재였다. 누구도 하지 못했던 마술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던 천재마술사였다. 공중을 걷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에 익숙해있던 그였다. 그런 그가 14년을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몸으로 버텨왔다. 웃으면서, 씩씩하게. 심지어 타인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면서. 그리고 마침내 끊어졌던 거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죽고 싶다고 말한다. 콧잔등을 맴돌며 귀찮게 하는 파리 한마리 조차 쫒을 수 없고 침대 위 천장이 새어 떨어지는 물방울도 피하지 못해 밤새 흠뻑 젖어버리고 마는 무력감. 그는 웃으면서 묻는다. 이제 죽어도 되겠느냐고. 


         물론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 같다. 그러면 안된다는 대답 뿐이다. 나 역시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했다. 만약 내가 이튼이라면. 이튼과 같은 입장이라면. 그러면 난 죽고 싶을까. 하지만 알 수 없었다. 난 이튼이 아니니, 당연하다. 그래서 영화 속 수많은 '이튼이 아닌'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안된다고. 죽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래, 그럼 죽어,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 별로 없다. 죽고자 하는 사람이 진심이든 그저 위로가 필요할 뿐이든간에. 하지만 죽고자 하는, 아니 죽임을 당하고자 하는 이튼의 의지는 확고하다. 아이러니한 것은 만약 이튼이 자살을 할 수 있었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을 만큼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면 그는 결코 자살을 선택하지 않았을 거라는 점이다. 아무 것도 못하는 상태로도 14년이나 버텨온 그 아니던가. 그래서 더더욱 그의 안락사 청원이 절실하고 안타까웠던 것 같다. 


         이 영화는 인도 영화다. 인도 영화하면 떠오르는 특유의 테이스트 역시 엄연히 존재한다. 그런 부분조차 흥미롭게 이야기 속에 녹아들어갔다는 게 이 영화의 미덕이기도 하고. 


    ***


    역시 할 말이 너무 많은 영화는 정리하기가 어렵다.



    사실 이 글은 2011년 말에 CGV 무비 다이어리에 올렸던 감상문이다.

    뒤늦게 발견해서 약간의 수정을 거쳐 블로그로 이동. CGV 내의 본문은 삭제했다. 왜 거기다가만 썼을까.




    청원 (2011)

    9
    감독
    산제이 릴라 반살리
    출연
    리틱 로샨, 아이쉬와라 라이, 쉐나즈 파텔, 아디티야 로이 카푸르, 나피사 알리
    정보
    드라마 | 인도 | 126 분 | 2011-11-02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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