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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능력자 (2010) : 강동원에서 시작해 고수로 끝나는 영화.
    본다/영화를 봤다 2010. 11. 12. 17:31
    초능력자
    2010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설마 저 제목이 스포일러일까? 생각하기 나름이겠지. 하하. 사실 나는 뻔하고 유치하기까지한 이 영화를 보고 신이 났다. 진짜다. 개봉 직전 시사회를 통해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기묘한 흥분 상태였던 것을 고백한다. 그건 내가 강동원을 좋아해서도 아니고, 수많은 개봉 전 기대대로 '쩔어주는' 비주얼에 홀렸던 것도 아니다. ㅡ그런 의도를 담은 화면들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여튼 단순히 말하자면 그저 장르적 호감에서부터 발생한 아드레날린이 과했던걸거다.

         왜 그랬냐고?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맨 프롬 어스'라는 SF 영화다. 그리고 초능력자는 제법 그에 근접한 느낌을 주는 SF였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물론 약간 근접했을 뿐이지, 사실 전혀 다른 영화고, 맨 프롬 어스의 팬이 혹시라도 본다면 무슨 개소리냐며 꺼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나 자신도 왜 이 영화를 보며 맨 프롬 어스를 떠올렸는지 설명할 수가 없지만, 여하튼 나는 그랬다. 최소한 중반 정도까지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실 나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블록버스터가 아닌, SF영화 '초능력자'가 정말, 진심으로 반가울 뿐이다. 그래서 이 글은 그냥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흘러갈 거 같다, 아마.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름 없는 초인(강동원)과 멍청해 보일 정도로 착한 규남(고수)이지만, 그리고 이야기의 진행도 규남을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나는 초인을 중심으로 영화를 봤다. 배우에 대한 호감을 떠나 캐릭터 자체가 대단한 힘을 가지고서도 그저 '죽지 못해 사는 듯, 허무하게만 보이는' 초인 쪽이 더 흥미로웠던 것 같다. 그렇다, 문제는 초능력이다. 초인은 눈으로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조종당한 사람은 그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매우 쓸모있는 설정도 있다. 그런데 그는 그저 가끔 장난처럼 먹고 사는 데 필요한 정도로만 그 힘을 사용하며 조용하게 살아간다. 더 대단한 일을 할 수도 있을텐데 초인은 그냥 조용하고 고요하게 살아간다. 그런데 평소처럼 슬쩍 돈을 가지러 간 곳에서 자신의 힘이 통하지 않는 놈을 만나버린거다.


         고요한 호수의 수면처럼 잔잔하기만 하던 초인의 삶에 규남이라는 물방울이 떨어지고, 그 물방울이 일으키는 파문은 가라앉히려 하면 할수록 더 커져만 간다. 이는 간단히 마무리 될 줄 알았던 규남과의 문제가 점점 커져만가고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만갈때, 모든 게 너 때문이라며 책임을 전가해버리는 초인의 어린애 같은 사고방식과도 일맥상통한다. 그저 가만히 두면, 그리고 조용히만 있으면 규남이 아무리 찾는다고 해도 불가능했을텐데 처음 겪는 상황에 불안함을 느낀 초인은 그 원인을 제거하면 되겠지, 라고 생각하고 움직여버린다. 몸만 컸지 머리는 어린 시절 그대로, 조금도 성장하지 않은 것만 같은 초인은 그래서 영화 속에서 선인 규남에 대비되는 악의 인물로 그려짐에도 어쩐지 신경쓰이고 눈에 밟힌다. .

         빼앗긴 것(고요했던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 오로지 그것만 생각하며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초인은 장난감을 뺏긴 어린아이와 같다. 왜 저런 게 나타나서 나를 괴롭힐까. 자기 자신이 그 누구보다 '남과 다르다는 것'에 고통 받았으면서도 '남과 다른' 규남을 없애버리고 싶어하는 모순. 영화가 초인이 아닌 규남의 시점을 위주로 진행되기에 초인의 심리는 그저 추측할 수 밖에 없지만, 필사적으로 힘을 사용하며 괴로워하고 분노하면서도 초인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규남과 만나는 순간, 비로소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본래 인간은 타인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는 법이니까. 하지만 초인은 그런 당연한 것을 모르고 살아왔기에 그 낯선 상황에 놀라고 당황해 가장 간단한 방법, 즉 제거하는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하지만 규남은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초인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반면에 규남은 어떤가. 사실 이미 초인의 힘이 통하지 않는다는 시점에 규남은 특별하다. 다른 사람에겐 아닐지 몰라도 최소한 초인에겐 이 세상 그 누구보다 특별한 인간이다. 유일하니까. 거기다 자신보다 한국말을 잘하는 외국인 친구들을 두었다는 것도 규남의 특별하다면 특별한 점이고. 영화 속에서 규남의 친구로 나오는 두 외국인 배우는 정말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데, 특히 터키계 청년은 더빙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완벽한 한국어를 한다. 게다가 그게 영화 내내 이어지는 웃음 포인트다. 덕분에 보다 심리적이고 섬세한 묘사를 원했던 나는 조금 아쉬울 수 밖에 없었지만, 나도 웃었으니까... 그리고 사실 규남에 대해 이야기할 것은 별로 없다. 규남의 캐릭터가 초인에 비해 평범하다고만은 할 수 없지만 이미 초인에 대해 저렇게까지 이야기해두었는데, 규남에 대해서까지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것은 예비 감상자들에 대한 폭력이다. 그래서 규남을 연기한 고수의 선하면서도 한없이 없어보였던 얼굴은 약간 쇼킹하기까지 했다는 얘기를 마지막으로
    규남에 대한 이야기는 접어두기로 한다.

         영화는 요약하자면 전혀 다르지만, 결국 남과 다르다는 점에서 비슷한 두 청년, 초인과 규남의 생존투쟁이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려진 이후로 아마 그렇게 절실하게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쳐본 적이 없었을 초인과 그런 괴물 같은 존재가 자신을 죽이려드는 경험을 처음 했을 규남은 차분히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눌 여유 한 번 없이 그렇게 치열하게 살기 위해 움직이는 거다. 그리고 나는 보통 이런 류의 대결 구도의 영화를 볼 때 그러는 것처럼 어느 한 쪽을 응원해야 할지 선뜻 결정하지 못한 채 그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 둘을 지켜보고 있었고. 영화의 마지막이, 그리고 군데군데 눈에 들어오던 허술하고 과장된 설정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이런 이야기 참 좋아한다. 그러고보니 그 언젠가 보았던 일드, '오로토로스의 개'와도 제법 비슷한 캐릭터란 생각도 들고. 그 드라마도 남들이 뭐라건간에 난 참 좋아했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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