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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래빗 홀 (Rabbit Hole, 2011) : 괜찮아 보인다고 진짜 괜찮은 것은 아니다.
    본다/영화를 봤다 2011. 12. 25. 21:31

    래빗 홀
    Rabbit Hole, 2010








         

         만약, 일생을 들여도 치유되지 않을 상처가 있다면, 그 중 하나는 아마 자신의 아이를 잃고 생긴 상처일 것이다.

         많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아름다운 니콜 키드먼이 정원을 손질하는 평화로운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 '래빗 홀'은 그런 상처를 가진 이들을 담고 있다. 베카(니콜 키드먼)은 저녁 초대를 위해 찾아온 이옷에게 미소 지으며 말한다.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해, 정원을 가꾸고 있다고.

         영화는 불의의 사고로 4살 난 어린 아들을 잃은 부부, 베카와 하위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담는다. 얼핏 보기엔 꽤나 안정적이고 차분하게 보이는 풍경들. 다소 귀찮은 이웃의 초대를 물리치고 아내는 자신만의 특제 리조또를 만들고, 퇴근한 남편은 부엌을 기웃거리며 요리를 탐낸다. 만약 이들에게 '그 사고'가 없었다면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사이좋은 부부의 저녁 풍경으로 착각해도 될법한, 그런 장면이다. 하지만 이들에겐 '있어야 할 존재'가 빠져있다.


         괜찮아 보인다, 혹은 괜찮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가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환하게 미소짓지만 고작 4살 난 아들이 죽는 그 순간을 목격했고, 그 '현실'은 그녀를 도망가게 놔두지 않는다. 그녀는 아들을 떠올리게 하는 모든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치워버린다. 아들을 떠올리게 하는 모든 것이 그녀를 힘들게 하니까. 그녀는 아직도 아들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아들을,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하위(아론 에크하트) 역시 힘들어한다. 하지만 그는 사랑하는 아들을 지워나가지 않는다. 아들의 흔적이 있는 집, 아들이 그렸던 그림, 아들과 함께 찍은 동영상, 아들이 사랑했던 개... 모든 것이 그에겐 소중하다. 그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서 나아가 아들을 '그리워하고', '추억'하려고 한다.


    그녀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확인받으려 한다.

         사람이 사람을 잃고, 그 슬픔을 어떻게 이겨나가야 하는 지에 대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잃은 존재가 누구건간에, 그 사람이 잃은 사람이 어떤 의미인지,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 타인은, 설사 가족이고 부부 사이일지라도 알 방법이 없다. 얼마나 거대한 슬픔에 빠졌는지도 알 수 없다. 짐작만 할 뿐. 그러니 사실은 그저 그 사람이 스스로 그 슬픔을 이겨낼 수 있기만을 바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마냥 그렇게 슬픔에 빠져있는 이를 두고 보지만은 못한다.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어하고, 이해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서로의 마음을 쉽게 이해하는 일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갈등하고, 부딪히고, 멀어진다.


         영화의 제목인 '래빗홀'은 이 이야기 속의 또다른 주인공인 제이슨(마일즈 텔러)이 패러렐 월드를 토대로 만든 만화의 제목이다. 베카는 제이슨과의 만남을 통해 이 만화를 읽게 된다. 평행우주, 그러니까 사실은 우주 속엔 수많은 내가 있고, 그 수많은 나들은 각자의 세상을 동시에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그런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갈 수 있는 구멍이 있고, 그게 바로 래빗홀이라는 얘기다. 베카는 이 이야기에 끌린다. 지금 내가 있는 현실은 믿고 싶지 않은, 그야말로 그녀에게 있어선 최악의 세상이지만, 또 다른 그녀는 너무나도 행복하게, 보고 싶은 아들과 함께 살고 있을 것이라는 꿈 같은 이야기니까.


    * * *


         흔히들 살 사람은 살아야지, 란 얘기를 한다. 맞는 말이다. 살 사람은 살아야한다. 하지만 그 사람이 살고자 하는 이유를 스스로 찾게 두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억지로 일으켜세우려고, 끌어당기려고 하지 말고, 그 사람이 스스로 깨닫고 제 발로 일어서도록. 가지고 있는 슬픔의 크기가,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이 같지만은 않은 법이다. 


    * 이 글은 CGV 무비패널 리뷰로도 등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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