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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늑대소년(a werewolf boy, 2012) : 자, 이제 순이에게 빙의할 시간입니다.
    본다/영화를 봤다 2012. 11. 13. 11:32

    늑대소년

    a werewolf boy, 2012










         사실 그랬다. 이 영화, 그렇게 적극적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지금 생각하면야 도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싶지만, 여하튼 처음은 그랬었다. 사랑스럽기 그지 없는 송중기도, 하늘에서 내려온 요정 같은 박보영도 이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는 내게 있어 많고도 많은 배우들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물론, 눈물이 줄줄 날 정도로 이 영화를 보게 해줘서 기쁠 뿐이고, 이 영화에 출연해줘서 감사할 따름. 오버 아니냐고? 그래, 오버 맞다. 하지만 한 번 순이에게 빙의해보세요. 이렇게 됩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그런 이야기다. 내가 영화를 좋아하게 만들어 준 팀 버튼의 '가위손'과는 형제 영화라고 해도 될 정도. 그러니까 참 흔한 이야기다. 소녀들이 꿈꾸는 소박한 판타지 로맨스. 현실의 나는 너무 고단하고 볼품없지만, 어디선가 비현실적이지만 그래도 나만을 바라봐주는 왕자님이 나타나, 지루하고 평범하던 일상에 핑크빛 물감을 풀어주지 않을까. 이 영화 '늑대소년'은 여자라면 한번쯤 꿈꿔봤을 그런 소녀적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힐링 영화다ㅡ 게다가 이 왕자님은 귀엽다 못해 사랑스럽기까지 한 비쥬얼을 가지고 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행위는 말을 하지 못하는 철수에게 있어 최고의 애정표현이다.


         폐가 좋지 않아 학교도 나가지 못하고 공기 좋은 산동네로 요양을 와야했던 순이(박보영)는 그런 자신이 참 밉고 싫다. 그래서 늘 자신을 챙겨주는 엄마(장영남)에게 퉁명스럽고 신경질적인 태도를 보이고 만다. 게다가 집을 구해줬다며 거들먹거리는 아빠 친구 아들 놈도 꼴보기 싫다. 그런데 이 불편한 생활 속에 갑자기 더럽고 지저분한 녀석이 하나 굴러들어 왔다. 생긴 건 사람인데 하는 짓은 영락없이 버려져 굶주린 강아지다. 불쾌하고 짜증이 난다. 그런데 이 녀석, 어쩐지 나를 따르는 것 같다. 


         그렇게 순이는 정말로 주인을 지키는 강아지 같은 소년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애견 교본을 들여다보면서 야생의 티를 벗지 못한 소년ㅡ아니 철수라는 이름이 생겼으니 이제부터 철수라 하자. 철수(송중기)에게 하나 둘 같이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가르친다. 물론 철수가 만족스럽게 해낼 때마다 머리를 쓰다듬어 칭찬을 해주는 것은 애견 길들이기의 필수 요소. 그렇게 순이는 철수를, 철수는 순이에게 길들여져 간다. 여기까진 글쎄, 굳이 강아지 같은 사람을 길들이기 위해서 순이에게 빙의까지 해야 할까, 싶지만, 그 철수가 송중기네요. 


         이렇게 이야기가 철수와 순이는 알콩달콩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았답니다~ 로 끝난다면 참 좋겠지만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다. 아주 오래전부터 순이를 노리고 있던 아까 그 아빠 친구 아들 지태(유연석)가 괜히 이 영화에 나오는 게 아니다. 그냥 좋아하는 여자가 다른 놈한테 가는 걸 보면서 살 집이나 대주고 있는 호구로 끝나고 싶진 않았던 지태는 이 슬픈 동화를 절정으로 이끄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어수룩하지만 그래도 하나하나 확실하게 철수의 목을 옥죄어가는 지태. 이 영화의 타이틀 그대로 철수는 '늑대소년'이 되어 버리고, 동화는 슬픈 엔딩을 따라 천천히 흘러간다. 


    아오...


        이 영화가 사랑스러운 이유는 송중기와 박보영이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라는 명제는 틀리지 않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은 다들 한번쯤 어디선가 보아왔던 것들이고, 단순히 귀로만 이야기를 들어도 크게 흥미롭지 않다. 하지만 한 편의 영상 동화를 보는 듯한 아름답고 반짝거리는 영상과 배우들이 더해지면 흥미를 가지지 않았던 자신을 자책하게끔 만드는 효과가 생긴다. 혹 영화를 봤다면 되짚어보자. 철수가 순이에게 길들여져가면서 영화의 장면 장면이 점점 반짝거리지 않았던가. 물론 내 눈에 그랬다는 것 뿐이지, 확언은 못하겠다. 하하. 


         여성 관객이라면 물론 순이에게 빙의하면 문제가 없는데, 남성 관객은 어떻게 하냐고? 처음엔 좀 힘들겠지만, 철수에게 빙의를 시도해보세요. 숲 속에 사는 한 마리 요정 같은 보영이가 머리를 쓰다듬어 줍니다. 



    * * *


         어느덧 나도 소녀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나이가 되었고, 그런 나는 그래서 더더욱 이 영화를 사랑스럽게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어느 쪽 순이도 빙의할 수 있을 것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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