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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2010) : 누가 무엇을 돌이킬 수 없는걸까.본다/영화를 봤다 2010. 10. 28. 19:57돌이킬 수 없는
2010
여기 한 남자가 있다. 7살 난 귀여운 딸이 날이 갈수록 예뻐진다며 팔불출처럼 걱정 아닌 걱정을 하며, 행운목에 빨리 꽃이 피지 않는다고 서두르기만 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지극히 평범한 꽃집 아저씨(김태우)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남자가 있다. 과거에 저지른 일로 인해 받게 된 자신과 가족을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을 피해 이리저리 이사에 이사를 거듭하고 있다. 겉으론 정말 평범하고 조용해 보이지만 사실 그는 감시 아닌 감시를 받고 있는 전과자다. 그래서 결코 평범하다고는 할 수 없는 자전거 대여점 가게 청년(이정진 1)이다.
한 소녀가 있다. 꽃집을 하는 아빠가 봉숭아 물을 들여주었는데 그게 너무 예쁘다고는 생각하지만 아빠가 서툴게 손톱을 깎아주는 것은 아파서 싫은 일곱살 난 미림이다. 그런데 이 소녀가 사라졌다. 갑자기. 사색이 된 평범한 꽃집 남자는 마을 사람들, 경찰들과 함께 온 마을을 뒤지지만 소녀는, 누구보다 사랑하는 딸 미림이는 돌아오질 않는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얼마 전에 이사온 조용한 청년이 전과자라는 사실을. 자, 어떻게 되었을까. 숨기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이 조용한 마을에서 유일하게 '전과가 있기에 마음껏 의심해도 되는' 강력한 용의자가 나타났는데 어떻게 되었겠는가. 평범했던 남자는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그 두 남자를 둘러싼 주위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의심하는 남자.
의심받는 남자.
사실 영화를 보면서 내가 신경쓰였던 것은 이 평범했던 꽃집 아저씨도, 전과가 있는 조용한 청년도 아니었다. 그들을 둘러싼 주위의 평범한, 내 주위에도 있을 법한 사람들이 난 신경쓰였고 불편했고 답답했으며 속이 상했다. 그들은 직접적으로 전과자인 세진이에게 행동하지 않는다. 손가락질하고 피하는 정도다. 대신 세진의 어머니, 세진의 여동생에게 '그들이 잘못되었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은 채' 행동한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아 진짜 사람들 못쓰겠더라 그렇게 살면 되나 정작 죄를 지은 본인은 따로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따위의 입발린 소리를 못하겠다. 왜냐하면 혹시 내가 그들과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당당하게 난 그들처럼 절대 안할거라고 말 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몇 번을 다시 생각해봐도, 난 분명 '그들과 다르지 않은 판단'을 할 거다.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 내가... 싶기도 하다. 물론 그렇게까지는 안할지도 모른다, 행동으로는. 하지만 이미 머리로, 마음으로 그들을 의심하고 경계한다면, 나와 그들이 다르다고 말 할 수 있는걸까?
이 영화의 제목은 '돌이킬 수 없는'이다. 완결되지 않은 형태의 제목인 이유는 그 주체도, 대상도 복수형이기 때문이 아닐까. 보다보면 알게 된다. 아, 이 사람의 이것이 돌이킬 수 없는 거였나, 라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든다. 하지만 가장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충식(그 평범한 꽃집 아저씨다.)의 세진에 대한 행동인지, 세진이 과거에 범한 범죄인지, 세진과 그의 가족을 백안시했던 마을 사람들의 태도인지, 누구보다 중립적이어야 하는 경찰의 그렇지 못했던 수사인지...
*
마지막으로 영화 자체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사실 이 영화, 90여분의 그리 길지 않은 러닝타임 안에 쉽지만은 이야기를 담아내려다보니 이래저래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띄인다. 좀 가혹하게 말하자면 중간중간 쓰기 힘든 부분은 휙휙 건너뛰며 일단 완성시킨 단편 소설의 초고를 보는 듯한 느낌까지 든다. 조금 더 시간을 들여서 조금 더 설명을 했더라면 조금 더 캐릭터의 행동에 몰입할 수 있었을텐데, 싶다. 분명 보는 이에게 생각을 하게끔 요구하는 영화인 것은 맞지만, 그것이 잘 만들어진 이야기와 캐릭터들로 인해 자연스레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는 주제를 담아내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특히 슬픈 일이다. 솔직히 이런 주제를 받아든다면 영화를 보지 않고서도 난 얼마든지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아무튼 정말로 괜찮은 영화가 만들어졌을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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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고보니 이 배우가 출연한 영화는 말죽거리 잔혹사 이래 처음이다. 개인적으론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가장 아까운 캐릭터였다, 세진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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